앞서 말한 바와 같이 축복을 받는 대상은 사람이지 물질이 아니다. 비록 물질에게 성수를 뿌리고 향을 피우고 십자를 그어도 그 물질의 본질은 그대로 있고, 그 물질에 하느님을 능력이 붙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신앙심을 가지고 그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단순 축복의 경우에도 소위 성물축복과 일상 생활용구를 축복하는 경우는 좀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 성물이라고 잘못 말하고 있는 심심도구 즉 십자가, 묵주, 성상, 전례도구 등을 축복하는 것은 첫째로 그 도구들을 하느님 공경에 바친다는 의미가 있고, 동시에 그 도구들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준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신심도구에 성자(聖字)를 붙여서 오해를 낳게 한다. 모든 축복한 상(像)을 성상이라 하고, 축복한 물을 성수(水), 봉헌축일에 축복한 초를 성초, 수난주일 행렬에 사용한 나뭇가지를 성지(枝), 재의 수요일에 얹어주는 재를 성회(灰)라 부르니 성자(聖字)에 현혹되어 그런 물질이 하느님의 능력이나 은혜가 붙어있다고 착각한다. 이런 생각은 바로 미신(迷信)이다.
이런 축복받은 물건이나 물질들이 하느님 현존을 상기시키는 것이므로 소중하게 다루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시적인 용도밖에 없는 소위 성지나 성회는 용도가 끝나는 대로 버릴 것이고, 소위 성초는 기도할 때만이 아니고 평소의 조명에도 사용할 수 있다. 소위 성상이나 성수는 잘 보관해 두면 된다.
신심도구가 아닌 건물이나 집기를 축복하는 경우에는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 주는 기도이다. 길게 말할 것 없이 주택 축복 기도문을 보자.
『주여 오늘 이 집을 지어 입주하며 축복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도와주시어, 이 집에 거처하는 모든 이로 하려금, 주님 안에서 피난처를 찾으며, 이 집을 나설 때에는 주님을 동반자로 모시고, 이 집에 돌아올 때에는 주님을 손님으로 환영하고, 마침내는 하느님 아버지 집에 미리 마련된 거처를 차지하는 행복에 이르게 하소서』
이 기도문에 사람에 대한 언급만 있지, 건물의 재료나 용도나 견고성이나 내구성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이는 축복의 대상이 사람이지 물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또 흔히 있는 자동차나 선박의 축복도 꼭 같은 원칙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성대하게 축복할지라도, 또 교황이 축복한 것이라도 부실 건물은 무너지고, 교통규칙을 무시하면 교통사고가 나는 법이다. 그래서 주택에 십자가를 걸어두거나 자동차에 묵주나 패를 달아도 그 십자가나 묵주가 집이나 자동차를 보호할 수는 없다. 신자들의 가정이나 자동차에 소위 성물을 두는 것은 그것을 보는 사람이 하느님을 상기하고 자신이 신자임을 자각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태도가 아니다. 우리의 신심도구가 민속신앙의 부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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