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는 한국교회가 모두 로마에서 보조를 받았어요. 보조방법은 통상보조와 특별보조가 있었는데, 특별보조는 건축보조 같은 갖가지 사업을 의미하는 것이었지요. 곧바로 교황대사에게 요청해 포교성성 전교회에 특별보조를 신청했어요.
로마에서 공부할 때 성베드로신학원에 살았는데, 그곳은 교황청 포교성성 산하 신학원이었지요. 전교 지방에서 신부가 유학을 오게 되면 거기에서 살았어요. 나 역시 그랬지요.
무엇보다 그곳이 포교성성 산하이다 보니 포교성성 장관이나 차관도 가끔씩 들렀어요. 덕분에 주교가 된 뒤에 그분들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지요.
돌아와서도 사무적인 편지로나마 꼬박꼬박 연락을 했었지요. 착좌식 후에도 긴밀히 연락이 오갔어요.
이러한 친분 덕에 건축 보조금 신청 결과도 금세 나왔던 것 같아요. 개인적인 친분으로 포교성성 차관 주교들에게 쉽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기에 보조금을 좀 더 수월하게 받을 수 있었지요. 그 돈으로 화서동 교구청 본관 건물을 지었어요.
교구청 건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교구 설정 3주년 때 기억이 생생하네요. 설정 3년 만에 교구는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어요. 교우도 5000여 명이나 증가했지요. 교구의 성장세는 타 교구에 비해서도 괜찮은 편이었던 것 같아요.
설정 3주년을 보내며 그 다음 3주년을 위한 구체적인 사목 방향도 마련했지요. 구체적으로 ▲가정마다 성경 구비(당시 신약성경은 번역본이 있었지만 구약성경은 아직도 번역 진행 중이었어요. 개신교 번역본이 더 많이 사용됐지요. 교회 출판물 읽기도 함께 진행했어요) ▲각자 1인 1명 입교 ▲자녀 성소지도 ▲교무금 수입의 30분의 1 내기(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30분의 1로 지정했지요) ▲주일 연보(헌금) 봉헌 ▲신학생 양성 ▲매년 가정별 미사 1대 봉헌 등이 있었어요. 교구민들의 열정에 힘입어 차근차근 계획을 실현시켜 나갔지요.
▲ 로마 유학 시절 성베드로신학원 정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