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에 존재하고 있는 교회. 그러나 사회에 속해 있지는 않은 교회』
이같은 인식이 있었기에 교회는 실천을 통해 시대를 앞질러 살 수 있었으며, 매시기 역사의 변화를 이끌어 인류가 하느님께로 한발 한발 다가서도록 할 수 있었다.
나흘 앞으로 다가온 총선, 그리스도인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더구나 이번 선거는 새로운 천년의 서막을 장식하는 역사적 현장이며, 새로운 세기가 던져주는 시대의 징표를 읽는 시금석이 될 장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십자가를 나눠진 신자 한사람 한사람은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성서의 말씀대로 새 시대에 걸맞게 첫 단추를 제대로 뀌어야 할 소명을 부여받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 정의의 시금석이 될 4·13 총선거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적잖은 세속의 유혹과 맞닥뜨리게 하고 있다. 마치 광야에서 예수가 숱한 유혹을 당했던 것처럼.
돈으로 표심을 사려는 금권선거, 지역 연고만으로 국민의 대표가 되고자 하는 지역주의, 후보자들의 권력지상주의 등이 그것이다.
교회는 이런 세상의 권력이 가져다주는 달콤한 유혹에 맞서 신자들이 올바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무수한 지침을 신자들에게 주어왔다.
모든 국민은 공동선의 촉진을 위하여 사용하는 자유 투표의 권리와 의무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현대세계에 있어서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75항은 그 대표적 가르침이다. 또한 교황 요한 23세는 회칙 「지상의 평화」46~79항에서 공동체의 구성원은 누구나 공동선에 참여할 수 있으나 「약자 보호 우선의 원칙」에 따를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은 공동선이 실현되는 사회와는 전혀 무고나한 듯 보인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납세와 국방의 의무마저 내팽개친 이들이 국민의 대표자가 되려고 나서면서 벌어지고 있는 오늘의 선거판은 마치 예수를 팔아 넘긴 율법학자들이 하느님의 대리자임을 역설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교회는 일찌감치 「생명과 진리, 사랑」을 존중하는 후보를 뽑자고 촉구한 바 있다. 지난 3월 8일 재의수요일을 맞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품위를 손상당한 모든 사람의 고통에 귀기울이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며 신자들의 행동기준을 제시했다. 아울러 정평위는 헌신적인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도덕적인 힘이 필요하며 거짓과 불신 조장, 부당하고 불법적인 수단 동원 등 여러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전개되고 있는 정국은 예의 구태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선거법이 바뀌며 처음으로 공개된 후보들의 병역과 납세실적을 대한 국민들은 최소한의 양심마저 버리고 자신의 안락을 꾀한 이들이 사퇴는 커녕 국민의 대표자로 자임하고 나서는 모양에 또 한번 깊은 나락에 빠져드는 듯하다.
수억원대에 이르는 재산을 가지고도 소득세 한푼 안낸 후보자들의 면면을 대하고선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일반인의 병역 면제비율이 4.6%인데 비해 후보자의 아들 중 24.6%가 병역을 완전히 면제받았다는 사실 앞에선 헌법상의 국민의권리와 의무마저 권력 앞에 무의미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새로운 천년기에 들어 처음 맞는 선거가 사순시기 가운데 있다는 점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잖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온 인류에게 주려고 했던 참다운 평화가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묵상하고 올바른 실천을 모색하길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정의를 올바로 세우는 길은 너무도 단순한 곳에 있다. 16대 총선 유권자수 3350만명, 이중 300만명이 가톨릭신자라는 사실에 희망이 있는 것이다. 가톨릭신자만이라도 하나된 마음으로 나선다면 우리 사회는 하느님나라에 한발 더 성큼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특히 4·13 총선은 우리나라 선거역사상 처음으로 전 국민 중 70%가 넘는 사람들이 유권자로 투표에 참가한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인의 선택과 행동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대희년에 맞은 총선, 복음의 빛을 통해 신앙인의 사명임을 확인하고 새로운 세기 첫머리에서 희망의 큰 물결을 일구는 중요한 장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불의한 세상과 정면으로 부딪쳐 죽기까지 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떠올리며.
■ 교회·시민단체가 제시한 후보 선택 기준들
“이런 국회의원 뽑읍시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를 비롯한 교회와 교외내 기관·단체들은 4·13 총선을 앞두고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기준으로 후보자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여러 차례 표명했다. 또 많은 시민단체들이 후보자 선택 기준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생명·진리·사랑 등의 근본적인 윤리적 차원에서부터 부패, 지역감정 조장 후보의 배제 등 구체적인 사항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주교회의 정평위는 3월 8일 담화문에서 생명, 진리, 사랑을 의원 선출 기준으로 제시했고 서울대교구 정평위는 지역감정을 조장하지 않고 금품 등을 돌리지 않는 후보 등 6개 항의 후보 선택 기준을 제시했다. 천주교 총선연대는 반인권적, 반환경적, 반통일적 인물과 부정부패 연루자 등 4가지 기준에 따라 낙선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2000년 총선 시민연대」는 후보 검증 기준으로 지역감정 선동, 부패, 선거법 위반, 헌정파괴 반인권 전력, 의정활동의 성실성, 개혁법안 및 정책에 대한 태고, 그리고 재산등록·병역·납세·전과 등 모두 7가지 기준으로 후보자 공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기준들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국민들이 어떤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지, 또는 절대로 뽑아서는 안되는지 정리해 본다.
▨ 이런 후보 뽑읍시다
1. 생명을 존중하고 진리에 따라 행동하는 후보
2. 이웃을 사랑하고 공동선을 존중하는 후보
3. 환경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후보
4. 법을 지키고 도덕성을 갖춘 후보
▨ 이런 후보는 뽑지 맙시다
1. 지역감정을 조장하거나 지연, 학연, 혈연에 의존하는 후보
2. 부정부패에 연루된 후보
3.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후보
4. 납세, 병역 등 국민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은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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