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시기에 우리는 판공성사를 봅니다. 고해성사를 특별히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일생을 돌아보며 깊이있게 준비하여 보는 것입니다. 이 판공성사를 잘 준비하기 위해서 초기교회의 성사방식을 아는 것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1세기에서 4세기까지 고해성사는 단순히 죄를 개인적으로 하느님 앞에서 용서를 받는 차원이 아니라 마태오 복음 18장 15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과 야고보의 편지 5장 19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에 따라, 교회 앞에서 화해를 해야만 했습닉다. 즉 죄인은 교회 공동체 앞에서, 참회 성사의 접전가에 따라 공개 고해를 해야만 될 때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고해성사는 개인적인 측면보다 교회적인 측면이 더 강조되었던 것입니다.
이 시기에 고해성사는 지역에 따라서는 마치 세례서사처럼 일생에 한번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가 그러면 도대체 언제 고해를 하여야 하는지의 질문입니다. 만일 단 한번밖에 못한다면 죽기전에 해야하고, 그렇다면 일생동안 죄를 짓고 살기에 합당하게 성체를 받아 모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그데의 지역 공의회(506년)는 이런 어려움에 대해서 적어도 부활과 성령강림 그리고 성탄 때에는 화해의 성사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뒤 4~6세기에는 고해성사에 대한 정신이 많이 희미해졌습니다. 이 성사의 의미를 알지 못했고, 교회도 많이 강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6세기부터 아일랜드 수사님들을 중심으로 다시 고해성사에 대한 이해가 왕성히 발전하였는데, 이분들의 생각에 고해성사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보속이었으며,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속죄하셨던 것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강조되었습니다.
이 생각에 따라, 죄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따지고, 죄를 범한 횟수를 따지고 나서 공개적으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고백하는 방식이 도입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점차로 지역교회에서 받아들여졌으며, 9세기에는 일반화되어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사제앞에서 죽을 죄에 대한 고백이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고해성사의 형태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여러 형태로 이루어졌지만, 크게 공개고백과 개인고백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 면을 한정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개인고백의 근본적인 정신이 보속이었으며, 이는 교화와 화해한다는 차원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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