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는 비할 나위 없이 하느님의 거룩함과 위대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야훼 하느님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깨끗함과 깨끗하지 못한 것을 구분하여 처신해야함을 가르치고 있다. 정화된 자세, 부정(不淨)에서 벗어나야 함은 레위기 전반에서 강조되고 있으나, 특히 레위기 11~16장에서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결법」에 관한 이 부분은 원래 독자적인 소책자였는데 사제계 사료에 통합되었다는 것이 성서학계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 가운데 현존하시는 야웨 하느님과 친교를 맺고 통교하기 위해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어떠헥 자신들의 삶을 처신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이 정결법은 이스라엘인들의 삶의 결정적인 요소였다. 여기서 말하는 부정은 비단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종교적, 도덕적, 인간 삶의 전반에 걸쳐 관련된 것이다. 성서에서 인간이 거룩해야 함은 선택이 아니라 마땅히 이루어나가야 할 의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느님만 위하고 하느님처럼 거룩하게 살겠다고 세상 모든 것을 버리고 수녀원에 들어왔는데 때때로 거룩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볼 때 몹시 괴롭고 한심할 때가 있다. 바로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함께 살고있는 자매하나가 전화를 받고 몹시 흥분해 있었다. 전화를 건 자는 바로 우리 공동체가 그토록 기다리고 찾던 사람이다. 작년에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을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와 이모가 데리고 살았는데 어느날 이 아이만을 내버려두고 사라진 것이다. 이 아이는 본 수녀회의 청소년 쉼터에서 반년이상을 수녀들과 함께 살며 학교를 다녔다. 이 아이를 볼 때마다 이렇게 예쁜 아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달아난 아이의 어미니와 이모가 어떤 사람일까 하고 언젠가 찾아올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저녁 수녀들은 이 아이와 함께 부모가 찾아오기를 기도 드렸는데 대희년이 시작되기 며칠 전에 뜻밖에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너무나 반갑고 기뻐서 그 전에 혼 좀 내주고 싶었던 생각은 어디로 가고 그저 고마운 생각만이 들어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고 떠나보냈다. 그런데 아이 아버지와는 원수같은 사이인 그 이모가 어떻게 알고서 그제야 수녀원으로 전화를 한 것이다. 다짜고짜 맡겨놓은 물건처럼 조카의 행방이 도대체 어찌된 것이냐고 다그치며 큰소리 치더라는 것이다. 하도 어이가 없어 다소 냉정하게 전화를 받으니 그쪽에서 하는 말이 『지금 전화 받는 사람 수녀님 맞아요??? 거기가 수녀원 맞아요???』라며 수녀의 냉정한 음성을 듣고 놀라더라는 것이다. 누가 누구의 말을 듣고 더 놀랐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 이 사람은 수녀들이라면 화도 낼 줄 모르는 사람, 화를 내어서도 안되는 사람, 예수님처럼 남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는 것일까? 자매수녀의 흥분된 감정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아뿔사! 그 순간 지금이 대희년이라는 것을 깜빡했었나?! 인내심이 부족한 나의 약점이 여지없이 세상에 탄로나고 말았다. 언성을 다소 높여 따지기 시작한 것이 문제가 될 줄이야! 하느님 믿는자가 이럴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까지 나왔다. 너무나 당황하여 그만 전화기를 놓아버렸다. 이럴 때는 기도 밖에 없다. 무조건 『제 탓이요』라고 가슴치며 주님께 용서를 청하였다. 『우리를 속상하게 하는 것은 상대방의 행동자체가 아니라 가장 근원적인 면에서 생각해볼 때 우리를 속상하게 하는 주범은 그들의 행동에 대하여 우리가 선택한 반응 바로 그것 때문이다』라는 스티븐 코비 박사의 말씀이 참으로 옳았다 (참고, 성공하는 7가지 습관). 기도 힘이 얼마나 컸던지 한참 후에 남편이 아내를 설득시켜 용서를 청해왔다. 욕설을 겁없이 퍼붓던 그녀의 음성이 어느새 천사의 음성으로 변하였다.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중국의 천태선사는 「부처와 악의 화신에게도 똑같이 선과 악이 들어있다』고 하였다. 단지 부터는 악을 잠재우고 선만을 사용하고, 악의 화신은 선을 잠재우고 악만을 사용할 뿐이라고 하였다. 천태선사의 이 말씀이 내 가슴 깊숙이 져며왔고 그 날밤 끝기도는 온통 감사로 이어졌다.
레위기의 중심부를 이룬다고 할 수 있는 16장은 온 국민이 죄를 벗는 속죄의 날, 「욤 키뿌르」(Yom Kippur)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이는 구약의 성 금요일이라 할 수 있는 대속죄일의 장엄예식에 관한 이야기이다. 제사규정과 정결법 다음에 이 대속죄일 규정을 배열시킨 것으로 보아, 앞의 규정들이 속죄일을 위한 준비지침임을 암시한다. 속죄의 날은 새해 첫날부터 10일간의 참회기간이다. 이 기간 안에 무슨 잘못이든 서로 용서해야만 하느님께서도 용서해 주신다고 믿는다. 이 기간안에 원수들은 다시 친구로 회복되기 위해 속죄한다.
새 천년을 여는 은총의 대희년 사순시기에 교황님께서는 지난 2000년 교회역사 안에서 교회 구성원들이 범한 모든 잘못들에 대해 용서를 청하였다. 교황님의 뒤를 이어 세계 도처에서도 교회의 과오를 고백하고 용서하는 물결이 교회지도자들을 통하여 잔잔하게 퍼져나가고 있음은 대희년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을 닮는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게 하는 신선한 자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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