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 자만이 업을 완성하리라/ 허나 깨끗하게 늙기가 말처럼 쉬운가/ 아하! 무릎 칠 때는 이미 늦가을』(「늦가을 문답」중)
꾸준히 섬세하고 진솔하며 포근한 시를 발표해온 중견시인 임영조(세자 요한)씨가 등단 30년을 맞아 다섯 번째 시집 「지도에 없는 섬 하나를 안다」(민음사)를 출간했다.
제38회 현대문학상(93년), 제9회 소월시문학상(94년)을 수상한 바 있는 임영조 시인에게는 「이소(耳笑)」라는 호(號)가 더욱 친근하다. 「귀로 웃는다」는 뜻의 「이소」는 대학 시절 미당 서정주 시인이 부처님같은 시인의 귀를 보고 붙여준 아호.
「이소당(耳笑堂)」이라는 작은 집필실을 마련하고 후배 시인들을 맞아주는 그의 모습에서 입도 눈도 아닌 「귀로 웃는다」는 말에 담긴 푸근함과 다정함을 엿볼 수 있다.
『요즘에는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현학적, 수사학적인 시가 많지만 시는 평이한 언어, 간결한 구문, 친숙한 소재로 쓰여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예전처럼 시가 읽히지 않는 현실에는 영상매체의 영향 외에도 시를 어렵게 만든 시인들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죠』
그가 「의인화의 명수」라고 평가받는 것은 이런 사상에서 연유한 것이었을까. 임씨는 의인화가 「깨달음」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밝힌다. 『의인화란 사물에 대한 기존의 인식, 관습을 무시하고 직관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것이죠. 곤충, 벌레, 식물 하나에서도 우주적인 비의(秘意)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나와 다른 사물과의 비교를 통해 사물의 실체와 나의 본질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시쓰는 일 속에서 마음이 가난한 이의 행복을 느낀다」는 임영조 시인은 또 「문학과 종교는 초월적인 것에 마음을 둔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며 늘 인간적 나약함이 신앙으로 메꾸어지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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