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교구 내 성당건축은 활발한 양상을 보였다. 1977년 교구는 도쎄나 교황대사의 주례로 조원동주교좌성당을 축복한다. 축복식에는 노기남 대주교와 지학순, 정진석 주교 및 성직자들, 이효상 공화당 의장서리 등 각계 인사가 참여했다.
당시 교황대사는 수원교구의 새 주교좌성당을 ‘기도하는 집’ ‘은총을 받는 집’으로 축복해 줄 것을 당부한다.
“수원교구 주교좌성당은 하느님을 공경하기 위한 집인 동시에 지역사회 공동체 안에서 ‘구심점’이 돼야 하는 집입니다. 또한 전체 수원교구 지역사회 안에서 봉사하는 본당이 돼야 합니다.”
한편 가톨릭시보 1978년 4월 9일자는 ‘수원교구의 산 역사- 북수동성당이 헐린다’라는 제목으로 북수동본당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기사는 성당 건축에 얽힌 이모저모를 상세하게 풀어낸다.
“수원시 최초의 성당이요 유일한 고딕식 건물인 북수동성당이 건립 46년 만에 더 크고 새 시대에 부응하는 현대식 건물로 탈바꿈하기 위해 지난달 6일부터 헐리기 시작했다. 4일 저녁 7시에는 김남수 주교 집전 송별미사가 봉헌되고 5일 저녁에는 생존한 역대 본당 신부들의 공동집전 미사가 거행됐다.”
당시 기사는 ‘생존’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정도로 교구 내 긴 역사를 자랑하는 북수동성당을 이야기하며, 정든 성당을 보내기 아쉬워하는 많은 신자들이 ‘철야기도’를 바치는 장면을 기사화했다. 기사는 다시 1933년 세워진 북수동성당에 얽힌 역사를 이야기한다.
“당시 불란서 선교사요, 북수동본당 주임이었던 심데시데라도 신부는 43년 동안 성당으로 사용하던 목조 기와집을 헐고, 삯바느질하는 모친의 도움으로 중국인 기술자들에 의해 75평의 고딕 건물을 지었다. 신자수는 겨우 4백여 명. 성당 안이 허전함을 느낀 심 신부는 ‘언제나 이 성당이 신자들로 꽉 찰까!’ 하며 전교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무심코 지나치는 성당 건물의 면면에는 역사가 흐른다. 당시 송별미사에서 교구장 김남수 주교의 강론이 인상적이다.
“수원시내 7개 성당이 외국인의 도움 없이 세워진 것은 아직 없다. 이 성당만큼은 본당 신자들 스스로의 피와 땀으로 이룩해 자랑스러운 성당을 ‘우리 후손들’에게 넘겨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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