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봉천3동 철거지역. 3800세대 중 대부분 떠나고 현재 150여세대만이 경제적 여력이 없어 머물고 있다.
11년째 이곳에서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을 위한 「꽃망울 글방」을 운영하고 있는 민경자(베아타·53)씨. 그를 만나러 언덕길을 오르다 보니 「가난한 이들의 삶이 보장되는 정책 실시하라」등의 깃발이 여기저기 나부꼈다. 철거민들은 기본적인 생존권마저 빼앗길 수 없다며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러한 처절한 삶의 현장 중심에서 주민들과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활동하고 있는 민씨는 자신의 최대 과업을 『주민들에게 자립심을 일깨워주고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그는 『이렇게 사는 것이 신앙인으로서의 올바른 삶인가』란 질문을 항상 스스로에게 던진다고 이처럼 수많은 고민과 고뇌 끝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살며 그 삶을 소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저는 사순절이라고 특별히 어떤 결심을 하지는 않았어요. 그저 주님께서 제게 주신 삶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 따름입니다. 가끔씩 삶의 무게가 굉장히 무겁게 느껴질 때면 흔들리지 않도록 도와달라며 간절하게 주님게 기도드려요』
87년 서울 봉천 6동, 구로 3동 등지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한 글방을 시작하며 13년간 한길만을 달려온 민경자씨. 그가 순찬한(?) 삶의 길을 포기하고 이곳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조금이나마 예수님의 삶을 닯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민씨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다 글방을 시작하게 됐다. 여기에 천주교 도시빈민사목협의회(현 천주교 도시빈민회)를 설립해 빈민들을 위한 사럽에 헌신했던 고 제정구 의원과 예수회 정일우 신부와의 인연은 그의 이러한 각오를 더욱 굳히게 했다.
『당시 제정구 의원님과 정신부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노력은 저에게 큰 희망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럼녀서 이 일은 바로 제가 투신해야할 길이라는걸 확신하게 됐어요』
꽃망울 글방에는 현재 40여명의 학생들이 나오고 있다. 90명에 이르던 숫자가 철거 이후 반이상 감소한 것이다. 때론 이사한 학생들이 다시 이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 민씨는 이러한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마음껏 공부하고 놀 수 있는 공간이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꽃망울은 학생들의 학습지도 외에 심성개발을 위해 풍물놀이, 생태탐사, 종이접기, 만화그리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꾸며나가고 있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교사 15명은 대학생과 졸업생들로 지역사회에 투신하고자 하는 자원봉사자들입니다. 앞으로 이런 젊은이들이 많이 나와 이 땅의 진리구현에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한평생 이들과 함게 하길 간절히 희망하는 민경자씨. 어쩌면 그의 삶 자체가 사순절의 의미와 부합되는 듯 하다. 가난한 이웃들과의 진실한 나눔과 회개, 민씨는 부족한 자신을 채찍질하며 변함없이 이 길을 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어야 참 신앙인이라 생각합니다. 여기에 있는 모든 이웃들이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각오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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