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아침은 생각만해도 상서롭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독일 뮌스터 교구 신학원에는 「요한네스 부르스」(Johannes Bours)라는 덕망이 매우 높으신 할아버지 신부님이 계셨다. 이분은 그의 마지막 저서 「내가 새벽별을 주리라」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 『성서 전체에서 가장 뜻깊은 아침이 무엇이냐고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것은 부활아침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아침에 죽음이 생명으로 변했다는 소식이 온 땅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으며 하느님께서 인간 역사 안에 결정적으로 긍정의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요한네스 부르스 신부님의 이 말씀을 회상하면서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해본다.
오늘 복음은 부활의 첫 증인들을 부활신앙으로 이끌었던 것이 바로 「사랑」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기쁜 소식은 성 금요일의 깊은 슬픔과 충격 속에 있던 사람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애절한 사랑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빈무덤을 보거나, 그에 대한 소식을 듣고 놀라서 달려가는 이야기로 시작되고 있다.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었다. 「빈 무덤」의 사실은 해석을 필요로 하고, 믿음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빈 무덤」을 처음 본 막달라 마리아의 처음 반응은 『누군가 주님을 무더에서 꺼내 갔습니다』라는 걱정이 가득 찬 「놀람」이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소식을 듣고 빈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의 반응도 마찬가지로 놀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빈무덤」에 대한 이들의 「놀람」은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가지고 있던 「사랑」에 의해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변해간다. 「빈 무덤」에 들어가 「보고 믿었다」는 제자가 그의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라고 불린다는 사실 자체도 이 점과 관련이 있다. 그 제자가 「빈 무덤」의 사실과 「잘 개켜져있는 수의」의 사실을 넘어서서 그 사실에 깊이 담겨있는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믿을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예수께서 그에 대해 가지셨던 사랑과 예수님께 대하여 가지고 있던 그의 사랑이었다. 이 점은, 오늘 부활주일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요한 복음서 안에서 바로 다음 대목인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부활하신 예수님의 만남」의 장면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성 금요일의 충격 속에 깊은 슬픔 속에 잠겨 있던 마리아를 일으켜 세워 「빈 무덤」으로 향하게 했던 것은 바로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황량한 무덤 가에서 울고 있던 그에게 들려오는 (동산지기로 밖에 보이지 않던) 낯선 사람의 소리, 곧 『마리아야!』라는 소리를 듣고 부활하신 주님을 즉시 알아볼 수 있도록 한 것도 바로 그 사랑이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이 「부활신앙」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들의 믿음과 사랑만으로는 부족하였다. 부활하신 주님께 대한 그들의 믿음은 주님께서 사랑으로 그들에게 다가오셨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복음서들은 한결같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몸소 두려움과 실의에 차 있던 제자들에게 다가가 발현하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부활 축일의 의미는 부활전야 미사 때 있었던 「빛의 예식」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제시된다고 생각된다. 「빛의 예식」때에 「짙은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성당」은 많은 사람들의 삶의 시상을 잘 표현해 준다. 우리 주변에는 「짙은 어둠 속에」살아가는 분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갑작스런 사고로 평생을 침대라는 십자가에 못박혀 살아야 하는 사람들, 중병 중에 있는 사람들, 갑작스런 실직 등으로 극심한 가난 속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 노년의 외로움, 또는 오랜 세월 함께 해왔던 인간관계의 단절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과거에 지은 큰 죄 때문에 도저치 떨쳐버릴 수 없이 깊은 죄의식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삶의 어둠들은 궁극적으로 따져보면 우리 인생의 가장 깊은 어둠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이라는 어둠의 다양한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예수 부활의 메시지는 이런 사람들을 향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니께서 참으로 이 모든 어두움을 밝혀줄 수 있는 참 빛이시요 생명이시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어두움이 아무리 깊다 하더라도, 「죽음의 어두움」한 가운데에서까지도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부활에 관한 기쁜 소식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줄 사명이 있음을 일깨워 준다. 부활 전야 「빛의 예식」때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상징인 부활 초에서 서로 서로가 빛을 전달 받았듯이, 우리도 우리가 전해 받은 그 「그리스도의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빛」이 드러나는 삶은 결국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시고 가르쳐주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이런 삶을 살아갈 때 『부활 대축일』의 복음말씀은 우리에게 언제 들어도 마음을 신선한 신앙의 기쁨으로 설레게 하는 기쁜 소식이 될 것이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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