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부활절은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서 이렇게 많은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다니 정말 기쁩니다』
칠십평생을 살아오던 삶의 터전을 떠나 조국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에 정착한 사할린 동포 전두한(시몬·77세). 이병옥(라파엘라·67세) 부부.
지난 2월 2일 영구 귀국해 한국 정부가 마련해 준 경기도 안산시 사동의 고향마을 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 부부는 부활절날 동포들과 함께 수원교구 대학동본당 교우들에게 선보일 아코디언 연주와 노래를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할린에서도 부활절이면 계란도 삶아 그림도 그리고 또 계란모양의 빵을 굽고 노래와 춤 등 여흥시간을 가져요. 또 가난한 러시아 사람들이나 양로원을 방문해 옷이나 비누, 칫골 등 생필품들을 선물하곤 했지요』
부활절을 지내고 기쁨을 나누던 일도 사실은 얼마되지 않는다.
50년동안 철통같이 여겨지던 공산주의가 페레스트로이카로 인해 점차 혼란해 지면서 그나마 신앙을 가질 수 있었다.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고향방문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이씨는 91년 인천에 사는 조카를 방문하면서 영세를 하게 됐고 사할린에 돌아가서는 혼자 묵주와 기도서만으로 신앙생활을 지속했다. 당시 사할린에는 성당도 사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즈음 대구대교구에서 원유술 신부님이 사할린에 공부하러 오셨고 여러 사람을 거쳐 신부님을 알게 됐죠. 신자는 나하고 신바오로라는 사람 둘 뿐이었으요. 신자도 아니었던 우순임씨 집에서 천주교에 관심있는 사람과 아이들 열 댓명이 모여 신부님과 미사를 드렸지요』
원신부와 함께 성당터를 마련하고 93년에 원이야코부성당을 지은 이씨는 이 본당 교우회장을 맡아 열심히 활동하며 남편 전씨도 인도했다. 이제 한국에 귀국해서는 오히려 남편 전씨가 대학동본당 구역장을 맡아 사할린 동포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본당과의 유대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뛰어난 아코디언 연주실력을 자랑하며 사할린 조선사범학교에서 음악교사로 25년동안 교편을 잡았던 전씨는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도 우리 부부는 러시아사람이나 다른 동포들보다도 넉넉한 생활을 했지만 늘 마음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 이곳은 임시살림처다 라는 생각뿐이었다』고 전한다.
딸을 대학교수로, 아들을 사업가로 훌륭하게 키워 냈지만 한국 귀국을 결정했을 때 자녀가 『가지 마라, 굶어죽는다』라는 얘기를 했을 만큼 한국에 대한 정서적 거리감은 상당히 멀엇다.
『지금 한국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내나라, 내땅, 내형제와 함께라는 사실이 너무 좋아요. 비록 자식들과 떨어져 있어 보고 싶고 같이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신앙으로 맺어진 형제, 자매들이 이렇게 많으니 외롭지 않습니다』
그래도 법이 개정돼 자식들도 함께 살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 이 부부는 『훌륭하게 자란 사할린 동포들의 손자, 손녀들이 조국으로 돌아와 조국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되길 기도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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