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 계신 어머니를 뵙고 신부가 된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하지요. 하지만 사제로서 북녘 땅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자세가 먼저인 것 같습니다』
혈혈단신 남으로 내려와 어머니와 형제들을 모두 북에 남겨둔 김명일 신부(서울 성산동본당 주임·한민족복음화 추진본부 지도신부).
최근 남북 정상회단 개최 합의 소식에 꿈에도 그리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감출 수 없다. 아흔이 넘은 노모가 여지껏 북한 땅에 샌존해 계시다는 것을 지난 98년 알게된 후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은 더하다.
『정상회담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하느님께서 헤어진 남과 북을 하나로 일치시켜달라고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이뤄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김신부가 남과 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매월 한 차례씩 까치봉을 찾아 미사를 봉헌한 것이 어언 10여년이 넘는다. 매번 가는 길이지만 갈 때마다 헤어진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 신앙의 빛이 가리워져 있는 북녘 땅의 동포들이 하루속히 복음화되기를 비는 마음은 한상 새롭고 간절하다.
김신부가 노모의 생존 소식을 들은 것은 이태전. 이미 5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고 못친의 연세가 워낙 높은지라 생존해 계실 것이라는 기대는 포기했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단아한 모습의 어머니가 아른거릴 때마다 까치봉을 찾아 북녘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것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던 어느날 중국에서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 9월 북한에 살고 있던 삼촌 「벨라도」가 중국에 나와 자신을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화급히 짐을 꾸려 고향 친구 몇 명과 함께 중국으로 나섰다. 마침내 50년 동안 헤어져 있던 삼촌을 만난 김신부는 노모가 살아계시다는 소식을 들었고 형제들도 모두 장성해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쉬운 일주일을 함께 보내고 난 뒤 귀국한 김신부는 그 후에도 몇 차례 인편으로 형제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어머니의 몇 년전 사진을 어렵사리 손에 넣었다. 그 사진은 말끔하게 새로 뽑아 큼직한 액자에 넣어 책상 위에 걸어 두었다.
『북한에서야 신앙에 대해 알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야 세례를 받은 신자이지만 동생들의 경우에는 신부라는 제 신분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지요』
김신부는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우리 모두가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겸허하게 넓은 마음으로 민족이 하나되기를 기도해달라고 당부한다.
김신부는 민족의 비극이었던 6·25 발발 50주년이 되는 6월 25일에도 까치봉을 찾아 통일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한다. 새로운 천년에는 분명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이룰 것이라는 굳은 신념을 갖고 또 다시 간절한 기도를 바칠 것이다.
『어머님도 이제는 제가 사제가 된 것을 알겠지요. 형제들과 함께 어머님을 모셔 미사를 봉헌하고 하느님의 축복을 빌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여생을 보내고 형제들도 신앙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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