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있는 때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증해주는 약속입니다. 교회는 이 사실을 믿으며, 사도 신경에 「죽은 이의 부활」이 아니라 「육신의 부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테르툴리아노와 히폴리토 성인은 단순하게 인간의 부활을 생가하면서, 인간이란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의 육신도 부활한다고 믿고 가르쳤습니다. 창조된 인간은 구원된 인간이고 육신으로 창조된 존재인 인간은 육신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로 사도가 육체를 경시하는 표현들을 성서에 써 놓은 것입니다.(예를 들어 고린토1서 15,50). 육신은 악의 거처이고 죄의 근원처럼 여겨졌는데 어떻게 부활할 때 그 육신을 가지고 부활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생긴 것입니다.
발렌티노파라는 이단자들이 만들어 낸 필립보 복음서(위경)는 인간의 육신은 부활한 그리스도의 육신을 옷처럼 입고 있다고 써 놓았습니다. 즉, 우리가 현세에서 가지고 있는 육신은 구원의 대상이 아니며, 우리의 몸과 피가 그리스도믜 몸과 피를 새로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생각은 그리스도교가 가진 부활의 희망을 나름대로 해석하려고 노력을 한 것이며, 특히 인간의 영적인 면을 강조하려고 나온 것이지만,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육신과 인간의 내면적인 부분(영적인 부분)을 분리함으로써 인간이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육적인 인간과 영적인 인간의 두 인간으로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한 인간을 창조하셨지, 육과 영을 분리하신 것이 아닙니다.
유스티노 성인은 「부활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고린토1서 15,50을 해설하면서, 바울로 성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상징하는 표현일 뿐이고, 인간이 바로 하느님의 왕국을 이러받을 주체이며, 그는 지금은 비록 죽을 육신을 가지고 있지만, 마치 죽을 육신을 가지고 사신 예수님처럼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신 육신은 성서의 표현대로 한다면 닫힌 문도 통과하는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간 것입니다(요한 20,19).
육신의 부활이 어떤 것이고, 부활한 육신이 어떤 모습일지는 이후 교회의 역사에서 계속 논의가 디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체험하지는 못했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선물인 육신의 죽음을 교회와 함께 믿으며, 지금 비록 정확히 알지 못하나, 성서의 말씀에 의지하여 육신의 부활을 믿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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