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바라고 꿈꾸던 성서의 나라 이스라엘 행이 이루어져 로마에서 텔아비브(Tel Aviv) 가는 비행기를 탔다. 마침 젊은 유대인 일가족 사이에 앉게 되었다. 호주에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간호원 쥬다씨 가족은 이스라엘 축절 중 새해와 욤키뿌르(속죄일)의 축제를 맞이하기 위하여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 이스라엘로 가면서 한편으로는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마음 가득한 나에게 쥬다씨와의 대화는 나에게 하나의 큰 은총이었다. 사실 나는 이스라엘로 가기 전까지만 하여도 유다인들의 풍습이나 종교력을 구성하는 특별한 날들과 절기들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조금 늦게 탑승한 관계로 창측의 내 자리에는 6살 짜리 쥬다씨의 아들이 먼저 차지하여 비켜주지 않는 바람에 오히려 뜻밖의 행운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지 않앗다면 나는 줄곧 묵주기도만 드렸을 것이다. 2시간 정도 비행하면서 쥬다씨는 유대인들의 삶의 절기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여주면서 나에게 이스라엘에서의 좋은 날들을 위하여 야훼 하느님의 큰 복(福)까지 빌어주었다.
레위기 23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종교력을 구성하는 7가지 축절들을 순서적으로 배열한 목록을 볼 수 있다. 안식일과, 과월절, 무교절, 햇곡식을 바치는 축절, 추수절, 새해맞이 죄벗는날(속죄일) 그리고 초막절이다. 이외 성서에는 14개가 넘는 절기들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념하는 야훼의 축절들은 자기들을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하신 야훼의 구원 역사를 증거하고 하느님과 관계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역사를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은 철두철미하게 이러한 축절들을 지킴으로써 야훼 하느님의 백성임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며, 과거의 역사를 현재에 살고, 현재는 미래를 살 수 있도록 다짐해 나가는 것이 곧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생활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텔아비브(Tel Aviv) 박물관에 가면 그 입구에 압바 코브너(Baas Kovner)의 히브리어로 된 말 옆에 영어로 번역되어 이렇게 새겨져있다. 『To remember the past!』(과거를 기억하십시요!). 『To live the present!』(현재를 생활 하십시요~). 『To trust the future!』(미래를 신뢰하십시요!). 이는 유대인의 영성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구약에서나 현재에서나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로 어우러져 있어야 함을 보여준다. 과거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을 위하여 베푸신 업적을 기억하고, 현재에 그것을 생활화하면 장차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는 자연히 신뢰를 갖게 된다는 말이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기념하는 절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절기는 무교절과 초막절이다. 이 절기들은 결약의 궤가 안치되어있는 중앙 성소에서 거행되었다.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지내는 절기는 이 레위기에 나오는 절기 외에 몇 가지 더 있다. 율법 안에서 즐기는 축제, 즉 하느님의 말씀인 토라(율법서)를 안고 회당(시나곡)에서 원을 그리며 기쁘게 춤을 추며 즐기는 축제와 푸림축제, 불의 축제(하누카) 등이 있다.
예루살렘 기숙사 내 같은 건물안에 유다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람들이 세운 수녀원 공동체가 있어서 이들 덕택으로 이스라엘의 축절에 초대되어 간 적이 더러 있었다. 그중에서도 잊지 못할 축절은 바로 추수절 축제이다. 이 추수절 축제는 새벽 4시부터 통곡의 벽 앞에서 시작되었다. 새벽 3시 반경 시내로 나오니 한마디의 말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통곡의 벽이 있는 곳으로 걸음걸이를 급하게 하고 있었다. 소리가 나는 것은 오직 그들이 지나면서 내는 발자국 소리와 옷들이 스치는 소리 뿐이었다. 나도 그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여주기 위하여 나의 수도복을 감추고 머리수건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잠바에 달린 모자를 썼다. 통곡의 벽 맨 뒷자석에서 그들의 축제를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새 젊은 유다인 청년이 나를 보더니 돌을 집어던졌다. 한 이방인이 옆에 있다는 것이 기분이 안 좋았던 모양이다. 이날 오전에는 구약의 장사 삼손이 태어났다는 고장 벳트 쉐메쉬(Bet Shermesh)에서 온 동리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축제에 초대되어 참으로 감명 깊었다. 이곳에는 많은 외국인들도 함께 하였다. 새로 추수한 모든 작물은 물론 그해 태어난 어린아이들, 동물들까지도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일일이 소개되고 축제마당에 마련된 단상으로 나와 작은 퍼레이드를 펼쳤다. 젊은 남녀들은 그들의 전통의상을 입고 서로 어울려 아름답게 춤들을 추었다. 이날 어린 여자아이들은 머리에 꽃잎을 엮어 관을 만들어 쓰는 것이 전통적인 풍습으로 되어 있었다. 추수절은 앞 축일로부터 50일이 됨으로 50일제라고도 했다. 그리스어 이름으로는 「펜테코스테」라고 하는데 신약에서 부활축일 후 50일째 맞게되는 성령강림축일이 되었다.
안식일은 히브리어 「샤바트」이다. 이는 중지하다. 삼가다. 그치다, 쉬다, 안식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원래 이스라엘인들은 가나안땅에 들어가 그곳 원주민들이 지켜오던 일곱째 날, 악령이 판치는 날, 흉일의 기본방식을 따랐었고 그러다가 차츰 야훼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설도 있다. 이러한 축제일이 바로 안식일이다. 이날은 단순히 일이나 일상생활의 활동을 중간시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회당에 모여 야훼 하느님께 제물과 기도를 드리는 의식을 가졌다. 이 모든 축절들은 야훼 하느님과 거룩한 일치를 견고히 하고 또 새롭게 하는 축제일이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지금은 어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쥬다씨의 가족모습이 그리워진다. 아빠와는 히브리어로 엄마와는 영어로 유창하게 말하던 쥬다씨의 개구쟁이 두 아들들이 보고싶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짧은 만남이었지만 한사람의 이방인에게 베풀어주었던 잊지 못할 친절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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