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원시교회와 사도들의 활동
4) 사도 성요한
아멘은 첫째로, 처음에 쓰는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한 말에 동의를 나타내고(1열왕 1,36). 둘째, 단독으로 쓸 경우에는 진실을 맹세하며(민수 5,22 신명 27,15~16), 셋째, 말이 끝난 이후에는 전례 용어로 쓰인다(1역대 16,,36). 또한 신약성서에는 편지 중에 하느님께 찬양을 드릴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는 『그렇게 되소서』라는 뜻이다(로마 1,25 16,27). 우리가 다루고 있는 묵시록 3,14의 아멘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적용되고 있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약속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로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느님의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대로 이루어졌다(2고린 1,20).
이 교회의 문제점은 미지근함이었다. 『미지근하다』는 표현은 그 도시에 있던 온천수의 온도와 연관이 있는 듯하다. 그 도시에서 약 오리 정도 떠어진 목화성에서 솟아나는 온천수를 관을 통해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뜨겁던 물이 다 식어버려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것을 보고 사도 성 요한이 이를 영적인 차원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주님은 이렇게 책망하신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그 교회의 신도들은 신앙을 버리지는 않았으므로 차가운 생활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양다리를 걸친 생활이라고나 할까. 신앙도 좋고 세속적인 생활도 좋다는 그런 식이었다. 바로 미지근한 생활! 이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대단히 무서운 병이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여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물질적으로 부유하면 신앙생활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다. 물질과 재산이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긴 하나 온전히 여기에만 의존하고 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인간의 생사를 온전히 주관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희석되거나 미지근해진다면 이는 물질주의와 배금사상을 하느님 위에 두는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가난하고 궁핍한 스미르나 교회 신도들은 대조적으로 부유하다는 칭찬을 받았다.
그만큼 이 세상의 판단 기준과 주님의 판단기준은 다른 것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이사 55,8)라고 주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회개하여 변화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은 성서 본문에 의하면 그들이 참 신앙을 증거함으로써 주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삶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불로 단련된 금을 사는 것과 같다(3,18). 비록 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배척을 받거나 지방 관리들로부터 비웃음과 심지어는 죽음을 당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신앙을 증거한다면 영적인 부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정화되어 더 이상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영적으로 부유한 자는 마음으로 가난한 자이며 이 세상의 것으로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정신은 주님께 있어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런 사람은 주님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으며 밤낮으로 그 법을 되새긴다(참조, 시편 1,2).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일수록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주님은 마치 도가니에서 금을 단련하듯이 의인을 단련하신다는 말씀(잠언 17,3 27,21)처럼 튿별히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훈련시키신다. 그리하여 이들은 당신의 특별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영성생활에 관심있는 그리스도인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모든 영성대가들의 가르침이 그러하듯이 영성생활에 진보하기를 원하는 이는 누구나 유혹과 싸워야 하며 특별히 주님이 주시는 정화의 길을 걸어야 하낟. 나의 노력과 은총의 도움으로 능동적인 정화의 길과 마지막에는 주님께서 주시는 수동적인 정화의 단계를 거칠 때 수행의 소기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고차원의 수행과정이며 모든 성인들이 예외 없이 걸어간 길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늘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는 주님. 아니 계신 데 없이 곳곳에 계시는 주님의 유일한 기쁨은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리라.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 마음을 열기만 하면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 그분께 마음의 문은 활짝 열고 기쁜 마음으로 나아가는 신앙인은 복되다.
(9) 십 사만 사천 명
이는 여섯째 봉인과 일곱째 봉인 사이에 삽입된 시현으로서 묵시록에 제시되 인류에 대한 구원관으로 볼 수 있다. 십 사만 사천이란 숫자는 천국 시민으로서 특별히 선택된 신자들을 일컫는다(묵시 7,414 1,3). 이 숫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묵시록에 나오는 숫자들이 각각 표징으로서 특별한 의미로 쓰여졌기 때문에 해석하는 데 있어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고 하겠다. 『도장을 받은 자들의 수효가 십 사만 사천 명』이므로 이는 분명히 신앙의 자손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수는 12의 제곱을 1000배 한 것인데(12x12x1000) 천이란 숫자는 다수를 표시하는 말이고 보면, 신앙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수많은 자녀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에게 더욱 복을 주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같이 불어나게 하리라』(창세 22,17)라고 하신 약속의 자녀들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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