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예수 부활 대축일인 4월 23일 오후 서울 동성고등학교, 수많은 외국인들이 이곳 4층 대강당에 모여들었다. 오늘은 바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는 「라파엘 클리닉」진료가 있기 때문이다. 「라파엘 클리닉」의료봉사팀은 특별히 이날 모든 외국인 환자들에게 부활 계란을 선물하고 조촐한 다과회도 마련하여 부활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어디가 아프세요』『우선 이쪽에서 접수하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치료를 위해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을 친절히 안내하는 한 젊은 외국인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페루의 「리마」란 도시에서 온 루이스 마르케스(24)씨. 올해로 4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다. 고국의 대학에서 언론분야를 공부하다 경제적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학비조달을 위해 이곳으로 건너온 그는 「라파엘 클리닉」에서 2년간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다. 이곳에서 루이스씨가 하는 일은 허드렛일부터 영어를 못하는 근로자들의 통역까지. 그는 스페인어, 영어, 한국어 등 4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 이곳에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마르케스씨는 친구의 권유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됐다. 돈이 없어 학업까지 중단하고 큰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먼저 서울로 갔던 친구의 전화 한 통화는 희망의 빛으로 다가왔다. 조금만 고생하면 가족들 생계는 물론 자신의 학비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 모든 것을 제쳐두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하지만 마르케스씨의 이렇나 부푼 꿈도 한 악덕 기업주를 만나며 이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가 전문 브로커에 의해 처음 소개받은 곳이 경기도 김포에 있는 어느 목재공장. 12월 한 겨울에 이곳에 온 루이스씨는 다른 외국인 노동자 8명과 함께 차가운 콘테이너 안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히터는 물론 화장실, 목욕시설 하나 변변하게 갖춰져 있지 않은 열악한 이공장에서 어렵게 살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런 조건은 감수할 수 있었지만 그가 무엇보다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이 공장 사장의 폭력과 멸시였다. 이곳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모두 불법체류자였기 때문에 이 공장의 사장은 이 약점을 이용해 온갖 횡포를 서슴지 않았다. 아무런 이유없이 날아드는 주먹과 발길질, 여기에 공장 사장은 온갖 육자문두를 쓰며 이곳 외국인 노동자들을 짐승처럼 다루었던 것이다.
마르케스씨는 이럴때마다 고국에 있는 부모님과 두 형제를 생각하며 흔들리면 안된다고 마음을 다잡곤 했다. 애초 이곳에 올 때 계획했던 목표를 위해 반드시 성공해서 가겠다며 하루에도 몇번씩 굳은 결심을 하곤 했다.
『너무 힘들어 집에 전화를 해도 걱정하실까봐 이런 사정을 얘기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전화를 끊고 많이 울었습니다』
이후 그는 안산, 수원 등지로 자리를 옮겨야만 했다. 불법 체류자란 약점 때문에 가는 곳마다 월급을 떼이기 일쑤였고 갖은 협박과 폭력에 시달렸다. 그나마 함께 생활하던 8명의 동료중 IMF한파 이후 7명이 실직당해 한 사람의 월급으로 생활해야 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암울한 시기를 보낸 마르케스씨. 그에게 새로운 길이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은 「라파엘 클리닉」과의 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친구를 부축해 우연히 찾아간 이곳에서 마르케스씨는 큰 감명을 받았다. 너무나 자상하게 외국인들을 보살피는 라파엘 관계자들을 접하고 그동안 상처받았던 가슴이 녹아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곳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기로 결심하게 됐다.
『라파엘과의 인연은 저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힘들었던 마음의 상처를 이곳에서 치유할 수 있었어요. 이분들에게 너무나 감사합니다』
마르케스시는 「라파엘 클리닉」에서 봉사활동하다 어느 의사의 소개로 서울 강남에 있는 영어학원 강사로 채용됐다. 현재 그곳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있는 그는 다시 삶의 의욕과 활기를 되찾았다.
그는 틈나는대로 언론과 컴퓨터 공부를 하며 처음 이곳에 올 때 세웠던 자신의 목표실현을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리운 부모 형제들을 다시 만나는 날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겠다고 다부진 각오를 펼쳐보인다.
특집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