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4장 첫 부분은 지성소의 등불에 대한 규정으로 나오는데 이는 출애굽기 27장 20~21절에 지시하는 바와 비슷하다. 올리브 기름을 등유로 하여 늘 등불을 켜 두라는 지시다. 오늘 우리 교회내 감실 앞에 성체 불을 켜두는 것이 바로 이 레위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레위기 25장에서는 안식년(1~7절)과 희년(8~55절)에 대한 법규이다. 즉 구약시대의 사회생활의 법칙을 말해주고있다. 사람과 땅에 대한 최고의 소유자는 하느님이시다. 안식년은 7년마다 땅에 대한 지배권을 하느님께 드리면서 경작하지 않고 묵혔던 땅에서 저절로 자란 것을 가난한 사람들, 특히 고아나 과부, 가난한 나그네에게 돌렸고 공중의 새나 들 짐승에게 돌렸다. 안식년의 뜻은 하느님만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고 인간은 관리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땅은 내것이요, 너희는 나에게 몸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레위기 25,23). 이렇게 보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주님의 땅에 잠시 세들어 살고 있는 것 뿐이요, 그 최종 소유자는 주님 한 분 뿐이시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희년」은 안식년을 일곱 번을 지낸 다음해, 즉 50년째해로 나팔소리가 방방곡곡에 울러펴지게하여 거룩한 해로 선포되는 것이다. 희년은 히브리어로 요벨(뿔나팔)이라는 뜻이 희랍어화된 말이다. 희년이 되면 제사장이 전국에 뿔나팔을 불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공포하였다. 희년에는 팔려갔던 종들도 자유인으로 돌아오고 매각되었던 토지나 집들도 본래 소유주에게 무조건 돌아간다.
희년 거행의 특징은 크게 4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거룩한 해」로 정해져서 특별히 주님을 위한 예배에 바쳐진 해이다. 하느님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다(레위기 19,2 참조). 둘째: 「해방의 해」로서 모든 민족에게, 심지어 노예에게까지도 자유를 선포하는 해이다. 셋째: 「정의의 해」이다. 땅은 본해 주인에게 돌아가 소수가 언제나 더욱 부자가 되는 것을 막았다. 넷째: 「창조의 해」이다. 어떤 점에서 희년은 커다란 우주적 휴식의 기간으로서, 이것은 동물과 대지에까지 확대되었다. 오늘의 성년의 유래는 이 구약의 희년에서 그 먼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희년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해이기도 하다.
희년의 개념과 메시지는 예수님의 삶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예수님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선포하신 하느님의 왕국 개념 안에는 희년의 메시지 전체가 수렴된다. 예수님의 첫 설교 장면 루가 4,16~30은 하느님의 왕국과 희년이 어떻게 서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루가 4,18~19에서 「해방」과 「자유」라는 낱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희년의 기본개념은 「풀어줌」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는 죄의 용서뿐 아니라 빚의 탕감 모두를 말하는 것이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후 매년이 희년이 된다 예수님의 단 한번의 희년 선포(루가 2,11 19,9 사도9, 22 10, 1~8 참조)로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예수님이 선포한 희년이야말로 궁극적 희년이기 때문이다. 『오늘 다윗의 고을에 여러분을 위하여 구원자가 나셨으니 그분은 그리스도 주님이십니다』(루가 2,11).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습니다』(루가 19,9). 여기서 「오늘」은 시간의 개념을 뛰어넘는 말이다. 늘 새롭게 맞이할 수 있는 질적인 측면의 시간, 24시간의 굴레를 능가하는 「오늘」이다.
마침 우리는 희년선포의 주인공이신 구세주 그리스도의 탄생 2000년 대희년을 살고 있다. 일부에서는 대희년의 열기가 벌써 식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운 목소리도 들린다. 희년을 현실화하는 강력한 힘은 누가 가지고 있는가? 두 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 소유자와 권력의 지배자들이다. 가진 자들의 포기 없이는 희년의 의미는 살릴 수 없다. 그래도 우리 주위에 알게 모르게 나름대로 희년의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자들이 있음은 함께 감사할 일이다. 제가 알고 있는 어느 본당에서는 「피리를 불고 춤을 추자」는 주제로 모두가 같은 빵을 나누어 먹고 즐기려는 본당차원 성체대회 준비로 분주하고, 밥한 그릇 나눠먹기운동으로 쌀 한줌씩 모으는가 하면, 어느 병원에서는 장기간 입원환자의 엄청난 치료비까지 탕감해주기까지 한다는 참으로 고맙고, 또 답답한 가슴 훈훈하게 하는 실제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나마 희년의 기쁨을 느끼게 된다.
구약의 희년선포는 경제적 문제로 발생한 사회적 불평등의 해방과 가진 이들의 포기를 전제로 하였음을 볼 수 있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의 희년선포는 인간사회에서 소외된 이를 복귀시킴으로써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해방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시대의 소외된 이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들이다. 그래서 이러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무엇보다 희년의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현대의 가난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경제적 약자로써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 속에서 좌절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 아니겠는가. 또한 재물과 소비주의에 매몰되어 인간성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킨 이들일 것이다.
『2000년 희년의 거룩한 문은 상징적으로 그 이전 희년들의 성문(聖門)보다 더 넓어야 한다. 이 문에 도달함으로써 인류는 단지 한 세기가 아니라 한 천년기를 넘어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삼천년기, 33항). 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 이기주의로 소외와 차별이라는 닫힌 문을 활짝 열고 환영, 환대, 개방된 열린 문으로 모든 이와 함께 정의, 평화, 일치, 화해를 이룩하여 드어가는 길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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