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영성사 안에서의 위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영성사 안에서 획기적이고 현저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는 영성 생활의 스승이며 가르멜의 개혁자로서 16세기 당시 교회안에서 뿐 아니라 사회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 후 지속적으로 그러했지만, 오늘도 저서를 통한 그녀의 영성적 가르침은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놀라운 관심을 끌고 있다. 과연 데레사의 카리스마는 어떠한 것이었으며 어떤 역할을 했는가?
1) 데레사는 가르멜 개혁자로서 원시 회칙의 정신을 따르는 남-녀 맨발 가르멜회를 창설하였다.
데레사는 당시 가르멜 수도회 생활 안에서 많은 문제점들을 발견하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것은 지나치게 인원이 많은 공동체 생활의 한계성(당시 공동체의 구성원이 보통 100여명이있는데 데레사는 개혁하면서 13명을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했음) 지참금 액수에 따른 수도자들의 생활 방식의 차별 대우, 수덕 생활에 적합치 못한 회칙의 완화 등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개혁 의도의 본질은 무엇보다 묵상기도와 관상기도를 강조한 원시 회칙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었다. 안일한 생활과 참된 묵상기도는 양립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녀는 원시 회칙의 「엄격한 준수」라는 방법을 통해 수도회 전체의 기본이 될 목적인 완전성, 사랑의 완전성을 지향하고자 했다.
데레사는 1582년부터 그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15년 동안 끊임없는 개혁운동을 전개하면서 맨발의 여자 수도원 열 일곱, 남자 수도원 열 다섯을 설립하였다. 그리고 그 수도회는 짧은 기간 내에 스페인 전역과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에 퍼져나갔으며 오늘엔 오 대륙 전체에 맨발 가르멜회는 남자 수도원 660여 개, 여자 수도원 780여 개로 헤아려진다.
데레사의 개혁을 굳히기 위해 1580년 가르멜 관구들은 그 분리의 필요성을 인정받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기 다른 총장과 회헌을 가지고 뚜렷이 구분되었고 마침내 완전히 두회로 분리되었다. 하나는 종전의 완화 회칙을 취하는 가르멜회(O.C.)였고 다른 하나는 데레사의 개혁의 정신을 따르는 맨발의 가르멜회라 불리는 수도회(O.C.D.)였다.
2) 데레사의 개혁활동은 가르멜 초기의 관상적 이상을 개혁하면서 동시에 사도적 임무를 재인식하도록 하였다.
데레사의 개혁은 단지 원시 회칙 실행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 시대의 교회의 사명안에 가르멜의 영성을 재정립하는 일이었다. 데레사는 무엇보다 참된 의미의 설립자인 옛사부들의 정신에 고무되어 그들의 생활의 모습을 재현시키려 하였다. 따라서 개혁의 주요 기초를 묵상기도에 두엇으며 청빈도 초기 가르멜 은수자들의 모범을 택했다. 그리고 그들의 은둔생활의 전신에 중점을 두었다. 그것은 독수적(獨修的) 고독을 추구하는 은둔이 아니고 은둔적 공동생활이었다. 이같이 데레사는 가르멜의 관상적 이상(理想)을 실현하는 충실한 후계자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면서 언뜻 모순으로 오해될 수 있지만, 그것에서 분리될 수 없는 사도적 목적을 동시에 제시하고자 했다. 그녀는 딸들에게 자기성화에 힘쓸 것과 하느님의 봉사자들을 위해, 특히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길 원했는데, 그들의 기도가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사제들의 선교활동을 지탱시켜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사도적 목적을 지닌다는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참된 사랑은 걷잡을 수 없는 내적 필연성에서 이웃을 위한 사랑으로 활짝 꽃피는 것이다.
이같이 데레사가 개혁으로 가르멜에 끼친 새로운 영향은 사도적 임무를 명확히 규정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의식 표면에 뚜렷이 나타나지 않았던 임무를 바로 자각하고 명료화 한 것이다. 그것은 가르멜의 소명이 띠고 있는 사도적 풍요성의 재인식이며 구체적으로 수녀들에게는 관상적 모습으로, 수사들에게 있어서는 관상적인 것과 동시에 활동적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3) 데레사는 영성 생활의 스승으로서 교회 안팎에 큰 영향을 주었다.
데레사는 내적 회심 이전에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참된 영적 스승으로서 영향을 끼쳤다. 강생 수도원 수녀들, 개혁 가르멜의 딸들, 많은 고해 신부들, 교구 및 수도회 사제들과 주교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 그녀에게 영향을 받아 내적 생활의 재생의 은혜를 받은 신학자들도 적지 않았다.
십자가의 성 요한에게 개혁의 정신을 일깨운 것도 데레사였다. 데레사는 그에게 하느님과 합일의 가장 높은 상태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과연 십자가의 요한은 그녀를 십비적 영역에서 권위자로 인정하여 그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조언을 따랐다.
데레사가 끼친 영향력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것으로 한정되었던 것이 아니었다. 개혁을 통해 당시 교회와 사회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는 이단 심문 때 교도권에 대한 성실한 존경과 진리의 추구 안에서 살아있는 건전한 정신의 자유와의 사이에 모순됨 없이 양립성이 가능함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녀는 당시 종교 개혁이 교회의 일치를 위협했고 여러 이설들이 혼란을 초래하여 그녀의 영성의 진가가 의심받기 쉬웠던 상황에서 자신의 저서와 증거적 실생활을 통하여 영혼 안에서의 하느님의 현존의 사실과 교회에 대한 자녀로서의 복종의 중요성을 명백히 그러냈고, 또한 하느님과의 합일 위에 기초를 둔 사도직과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 세례성사를 받은 이들의 초자연적 연대성을 강조하였다.
신대륙의 정복으로 스페인의 모험가들에 의한 전쟁, 살상, 노획물 등으로 흥분되어있던 사회 상황에 데레사는 하느님의 생명에로 향해져 있는 모든 인간들의 본래 소명을 강조하며 인종, 문화, 종교 여하를 막론하고 인간으로서 지닌 그들의 품위를 존중하도록 촉구하였다.
4) 데레사는 사후에 더욱 지대한 영향을 교회의 영성생활 뿐 아니라 사회의 문학에까지 미쳐왔다.
1583년 「완덕의 길」과 「영적 보고서」가 에보라에서 출판되면서 즉지 거듭 재판되었으며 데레사의 저작 전집이 1588년 살라망카에서 출판된 뒤 계속 판을 거듭했다. 16세기에 13판, 17세기에 125판, 18세기에 243판, 19세기에 269판 그리고 20세기엔 530판을 넘어섰다. 그녀의 저서는 유럽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오늘엔 한국어를 비롯하여 아시아 지역의 많은 언어들로 번역되어 있다.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서 데레사가 시성된 후 역대 교황들은 그녀의 가르침에 찬사를 보내면서 저서들을 읽고 그녀의 영성을 본받도록 권유하였다. 그리고 바오로 6세는 1970년 9월 27일 데레사를 「교회의 박사」로 선언하였다. 신학자들은 신비생활의 여러 문제를 식별하고 해명하기 위하여 데레사의 가르침을 참고했으며 그 권위를 존중하면서 따랐다. 특히 하느님과의 합일에 있어 최고봉에 이른 뛰어난 인식, 관상 기도의 단계에 대한 완벽한 묘사, 관상기도와 사랑의 완전함과의 상호관계 그리고 영혼의 생명과 관련되어 있는 삼위일체 신비의 생생한 전망 등을 데레사에게서 배웠던 것이다. 또한 17세기의 정적주의와 반 정적주의 논쟁 때에도 학자들은 데레사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반론과 맞섰다.
데레사의 영성은 성 프란치스코 드 살 등 많은 교회 학자들에게 뿐 아니라 파스칼, 리술리에 등 사회의 문학인들에게까지 영감을 주었으며 큰 영향을 미쳤다.
데레사의 딸들 중 그녀의 정신을 성화(聖化)로 가장 잘 구현시킨 이닌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1873~1897)이다.
19세기에 이어 20세기 내내 아빌라의 데레사의 영성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져갔다. 그것은 3천년기에 들어서서 더욱 그러할 것이다. 놀라운 심리학적 통찰과 자기 반성을 통해 내적인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자기 자신을 알며 사랑했는지 그리고 그녀와 친교를 이루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관상하며 사랑했는지를 상세히 묘사해 주는 데레사의 저서들은 오늘 심리학자들, 철학자들, 모든 종파의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비그리스도인들이나 무신론자들에게까지 관심있게 읽혀지며 연구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