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9월 5일 오후 2시. 양평성당에 불이 났다. 누전으로 인한 화재가 원인이었다. 작은 불씨가 성당 전소라는 참화로까지 이끈 것이다. 갑작스러운 화재로 성당을 잃어버린 신자들은 ‘눈물’만 삼켰다.
가톨릭신문 1980년 9월 14일자는 ‘수원 양평성당 전소돼’라는 기사로 당시 참혹했던 화재 소식을 전하고 있다. 기사는 당시의 피해 상황과 당시 신자들이 보여준 의연한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뜻밖의 참화로 성당을 잃어버린 신자들은 잿더미로 변한 성당을 바라보며 오열을 삼킨 채 성당 마당에 모여 통회하는 마음으로 9일기도를 바치며 성당재건을 걱정하고 있다.”
제의실이 전소되고 제의, 제구 등도 모두 타버려 피해액은 1000여 만 원을 웃돌았다. 더욱이 화재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은 상황. 교구는 화재 다음날인 6일 교구청에서 긴급 참사회의를 열고 겨울이 오기 전 새 성당을 건립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아 여러 곳에 협조를 요청했다. 기사는 이어 양평성당에 얽힌 구구절절한 사연과 역사를 전하고 있다.
“양평성당은 김정진 신부가 6?25 동란(한국전쟁)으로 폭격당한 용문 마내성당을 54년에 철거한 골재로 85평의 건물을 신축, 가난한 신자들의 힘으로 지난 3년간에 걸쳐 새롭게 단장했다가 이번에 화를 입었다. 성당 보수공사에 이어 220세대 1000여 명 신자들은 움막 같은 사제관을 보다 못해 다시 허리띠를 졸라매어 4월 20일 1260만 원을 들여 건평 33평의 사제관을 완공, 9월 14일 낙성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낙성식을 9일 앞두고 성당에 불이 났고, 신자들은 낙성식 대신 성당 재건을 지향하는 9일 기도를 봉헌하게 된 것이다. 기사는 당시 주임 송병수 신부의 심란한 마음을 적으며, 1000여 명의 가난한 신자들 앞에 놓인 ‘무거운 십자가’를 함께 들어줄 협조자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무거운 마음도 잠시, 가톨릭신문 1980년 10월 26일자에서는 양평성당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전국에서 답지한 신자들의 성원으로 복구 채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본당 신자들이 3000만 원의 모금계획을 세워 그 가운데 1500만 원을 마련했고, 교구에서도 1300만 원을 지원했다. 전국에서 보내온 성금은 당시 기준으로 540여 만 원. 십시일반 모은 신자들의 눈물겨운 정성은 화재로 성당을 잃은 신자들의 마음을 쓰다듬었다. 1980년에도, 2011년에도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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