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989년 두 차례에 걸친 방한으로 한국교회와 깊은 관계를 맺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은 현 시대 안에서 어떤 의미이고 한국교회에는 어떤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가.
해외 공관장 회의 참석차 방한한 주 바티칸 한홍순(토마스) 대사를 만나 이번 시복식이 한국교회를 비롯 세계 교회와 인류에 남기는 의미에 대해 들었다. 더불어 부임 6개월을 맞은 바티칸 대사로서의 근황 등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 한홍순 주 바티칸 대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이 인류의 화합·평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홍순 대사는 “요한 바오로 2세는 자신을 저격한 범인을 찾아가 용서하시는 등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보여줌으로써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거룩하게 사는 모범을 드러낸 최고의 사목자였다”고 부연하면서 “그런 만큼 선종 직후부터 시복시성 절차를 원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오히려 이번 시복식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교회 입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은인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103위 성인이 탄생한 것은 온전한 그분의 한국 사랑 덕분입니다. 만약 당시 요한 바오로 2세가 성인들에 대한 기적심사 면제를 허락하지 않고 원칙대로 시성 절차를 진행했다면 난항을 겪었을 것입니다.”
한 대사는 그런 사실을 감안할 때 두 차례 방한을 통해 한국교회사에 큰 획을 그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에 특히 한국 신자들의 기도와 관심이 커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몇 세기에 걸쳐 복자 및 성인품에 오르는 사례들과 달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은 사후 6년 만에 이뤄지는 것으로 매우 이례적이다. 6년 전 선종 소식을 접하고 장례식을 목도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복식을 지켜보는 행운을 맞았고, 알려진 것처럼 이탈리아 로마에는 시복식 행사로 인해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교황청도 고육지책으로 시복식 참가에 대해 아예 ‘노 티켓’으로 발표했다.
“교황님의 고국 폴란드 신자들만 10만 명 이상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전야미사 및 시복식 장소 근처에만 자리 잡게 돼도 은총일 것이라 생각해요. 병자들의 참석도 많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요즘 바티칸 대사관 공관은 물론 여타 대사관에도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대사는 그만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한 신자들의 원의가 가득한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요한 바오로 2세와 한국교회의 인연을 설명하면서 한 대사는 한국교회 순방했던 모습이야 말로 ‘찾아가는 사목’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바티칸에 찾아오는 이들만 맞이한다면, 여력이 없어 로마 순례가 가능하지 않는 이들은 제한될 수밖에 없기에 당신이 직접 양들을 찾아 나선 것이라는 풀이다. 자신의 첫 회칙 「구원자」에서의 내용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기본으로 한, ‘백성들을 찾아가고, 또 그들과 함께하는 사목자’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교회 안에서 한국교회 위상이 높아진 것도 이러한 요한 바오로 2세의 한국 사랑이 큰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한 대사는 말했다.
84년부터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위원을 지내며, 또 70년대부터 한국교회 평신도운동 분야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요한 바오로 2세의 두 차례 방한 행사 준비에서도 중심에 섰던 한 대사는 그것을 계기로 여러 차례 교황을 가까이서 만나는 기회를 가진바 있고 그런 만큼 기억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개인적 만남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늘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찬미예수님’ 하고 인사를 건네면 늘 한국말로 답을 주셨고 자주 한국교회가 역동적임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식 자리에서도 늘 한국교회를 챙기셨던 모습이 마음에 남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은 각 지역 교회가 추진하고 있는 시복시성 절차의 진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특히 현재 교황청에서 시복 심사를 받고 있는 최양업 신부 및 124위에 대한 결과에 대해서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생전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하고 있는 한홍순 대사
지난해 9월 바티칸 대사로 부임, 6개월 정도의 시간을 지내면서 바티칸 내의 한국 및 한국교회 이미지가 대단히 호의적이고 기대치가 높음을 새삼 느끼고 있다는 한 대사. 2010년 G20 정상 회의 때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직접 친서를 보내온 것도 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한 대사는 그 같은 점에서 하느님과 한국교회에 감사하고 그 일원이라는 것에 대단한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대사 업무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돌리자 한 대사는 “발로 뛰는 것이 외교인 것 같다”고 말을 열면서 부임 직후부터 교황청을 중심으로 80개국 상주 대사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에 동분서주하며 한국과 한국교회를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고 들려줬다.
“대사 직분을 부여 받았지만 장소만 옮겼다는 생각일 뿐 개인적으로 맡겨진 평신도 소명을 잊지 않고 있으며 대사 업무도 ‘하나의 사도직 수행’으로 여긴다”고 밝힌 한 대사는 “바티칸 내에서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역동성’이며 그 다음으로 꼽히는 것이 평신도들의 적극적 활동인데, 특히 교황님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고위 성직자들 경우 지난해 아시아평신도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특별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게 놀라웠다”고 그간의 이야기들을 전했다.
바티칸 대사로서의 신임장 제정을 위해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알현한 때에도 아시아평신도대회가 주 화제로 떠올랐다고 들려준 한 대사는 “그 자리를 통해 한국교회가 아시아에서 선교 주역으로 나설 자세가 돼 있음을 말씀드리고 아시아 교회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또 아시아 교회 방문 필요성을 제시하면서 우회적으로 한국교회 방문도 청했다는 뒷얘기를 덧붙였다.
앞으로 바티칸과 한국정부, 한국교회와의 협력 관계를 돈독히 하는 가운데 ‘사랑의 문화 실천’으로 국격을 높이려는 한국 정부의 의지와 정의 평화를 실천하는 바티칸의 도덕적 지원이 잘 맞물려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고 밝힌 한 대사는 “또한 한국교회의 역할을 알리면서 한국 가톨릭이 어떻게 다른 종교들과 모범적으로 평화 공존을 실현해 가는 지 세계에 소개하고 싶다”고 전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교황청립 그레고리안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한 대사는 한국외국어대 교수, EU 연구소장을 지냈으며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 회장,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위원 등을 맡아 활동해왔다. 지난해 6월 8일 주 바티칸 대사 공식 임명장을 받았으며 9월 15일 현지에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