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불어오는 봄바람이 따사로운 햇빛을 몰고 다니는 주일 아침. 한창 무르익은 봄경치에 빠져 신자들도 여럿, 한번쯤 주일미사를 거를 법한 때에 백봉현(디모테오·서울 수서동본당)씨는 어김없이 성당으로 나섰다. 성당을 향한 그의 발걸음은 상당히 재게 나아간다. 휠체어의 두 바퀴와 함께.
『장애인이 성당을 오가는 길을 동행취재하고 싶다』는 기자의 전화요청에 그는 의외로 쉽게 응했다. 하루, 그의 집에서 성당에 이르는 길과 성당 안에서의 백씨의 걸음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그의 집은 아파트인 덕에 집에서 도로까지 향하는 첫걸음은 예상보다 쉬웠다.
엘리베이터와 아파트 입구의 경사로는 그의 이동에 거스름이 없었다. 그런데 횡단보도를 건넌 후 그가 인도로 올라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뒤에서는 끊임없이 차가 달려와 불안한데 계속 도로변을 걷고 있다. 『도로턱 때문에 아스팔트에서 인도로 올라설 수 없어요』10센티미터도 채 안되는 턱 때문에 결국 그는 위험과 공포를 감수하며 성당으로 향해야만 했다. 전국의 장애인은 100만여명으로 추산되지만 거리에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이들을 보기 어려웠다는 기자의 기억에 『불편하고 때론 위험하니까 장애인들이 아예 나오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대답했다.
정상인들에게는 15분 가량 소요되는 거리를 25분 정도 걸려 드디어 성당에 도착. 본당은 최근 건축된 건물이라 장애인들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끔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백씨는 편의시설이 되어있는 성당들을 꿰뚫고 있다. 그렇지 않은 성당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멀기만 한 곳이기 때문이다. 경사로를 따라 입구에 들어서자 2층 경당으로 올라갈 수 있는 휠체어 리프트가 좌우 계단 중 한 쪽에 마련돼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전 시간 미사에 온 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길 기다힌 후 백씨가 리프트를 타고 난간을 돌아 올랐다.
미사가 끝난 후 백씨는 신자들이 내려가길 기다렸다. 『다른 이들의 통행에 불편함을 주기 싫어 모든 신자가 내려갈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이 백씨의 설명. 지나던 신자들이 『왜 내려가지 않느냐』『리프트가 혹시 고장났느냐』고 따뜻한 관심을 보인다. 『신자들과 일반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고 그는 귀띔했다.
또다시 도로변을 걷는 그의 모습을 보기가 불안한 마음에 택시를 잡았다. 백씨가 택시에 오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휠체어를 접고 펴야 했지만 기자는 방법을 몰랐다. 장애인을 돕는 기본적인 소양교육을 현재 정규교육과정에서는 다루질 않고 있다.
예전에는 장애인들에게 승차거부를 일삼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요즘 들어 그런 경우는 열에 셋 정도로 줄었다고 백씨는 말했다. 성당과 병원외출이 전부이고 그 때마다 택시를 이용한다는 그는 장애인이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란 아직 「모험」이자 「무모한 도전」이라고 덧붙엿다. 지하철인 경우 입출구 계단을 오르내리고 플랫폼에서 전동차로 올라서고 환승역을 지나는 전 과정 중 하나라도 어긋남이 생기면 옴짝달싹 못하고 마는 것.
『성당에 오면 사회의 차별과 냉대를 넘어 모든 이가 평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 매일 미사참례를 하게 됐어요. 재활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외출하던 것이 전부이던 제가 성당에 다니면서 하루에 한번씩은 외출을 하는 거죠. 대부분 장애인들이 집밖으로 나가고 싶어하지만 막상 거리에 나서면 불편한 점이 많아 포기하기 쉬울 거예요. 집 주위의 가까운 성당에라도 편히 갈 수 있으면 좋을텐데…』
그를 도와주는 일에 서투른 기자에게 그는 너무 미안해하지 말하는 듯한 미소를 지우며 다시금 집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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