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학교 3학년에 진학한 김군은 학교 가기가 싫다. 공부를 해야 하지만 기운이 없어 책상에 앉아 있기도 힘들고 책을 일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가끔 어지럼증도 느낀다. 그나마 없는 살림을 뒤적거려 겨우 한 차례 저녁 밥상을 차려주던 할머니도 몸져 누웠다.
학교에 도시락을 싸 가지 못해 점심시간이면 친구들 눈을 피해 학교 식당에서 정부지원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창피해서 학교 구석으로 숨었지만 굶는 것도 하루 이틀, 나중에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식사를 하고 있다. 점심은 해결됐지만 그 때문에 김군은 친구들을 피해 다니게 됐고 외톨이 생활을 하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몰아친 이후 처음으로 소비가 늘어났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있던 지난해 상반기. 시중에는 고가의 승용차, 외제 화장품 같은 물건들의 수요가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돈이 없어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결식 학생들의 수는 오히려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었다.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초 4개월 동안 그 전해에 비해 무려 31.4%가 증가했다. 다른 지역의 경우에도 국가 경제가 호전됐다는 여러가지 통계 지표에도 불구하고 결식학생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전국의 결식학생 수는 16만4천여명 가량인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난해 초 15만1천375명보다 1만3천여명이 또 늘어난 수치이다. 98년말에는 13만9280명이었고 이는 98년초 2만7862명의 5배가 늘어난 것이다. IMF 한파의 가장 큰 피해자는 이들 아동과 청소년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공식 집계 학생들의 수치는 대부분 생활보호대상자나 결손가정, 실직자 가정 등 빈곤한 가정 형편으로 학교에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하거나 급식비를 납부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수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이같이 정부의 지원을 받거나 공식적인 수치로 집계된 학생들 외에 굶는 것이 창피해 밥을 굶으면서도 어려움을 밝히지 않는 학생들도 많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현재 16만4천여명이 결식학생으로 집계돼 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은 학생들이 한끼 밥을 먹기가 힘든 어려운 상황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학교에서 정부 지원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학생들도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면 그나마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굶어야 한다. 정부가 지난 2월말 전국 결식 학생들에게 주말과 휴일에도 식사를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었으나 예산 문제로 이것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올초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는 800여명의 어린이들이 손에 풍선과 플래카드 등을 들고 「결식아동 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평화의 거리 행진」을 벌였다. 개신교 결식아동보호단체인 부스러기 선교회라는 곳에서 산하 「신나는 집」소속 어린이들과 함께 정부와 사회의 따뜻하고 과감한 관심과 배려를 촉구하는 시위였다.
이들은 학교 급식법에서 하루 한끼 점심만을, 그것도 방학이나 공휴일을 제외한 280일 동안만 급식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저 점심 한끼만을 극히 제한된 학생들에게 제공하면서도 결식아동을 위한 지원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호소했다.
물론 IMF 한파 이후 결식학생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정부에서는 물론이고 민간단체들도 이들의 어렵고 딱한 사정에 눈길을 돌리곤 했다.
정부의 급식비 지원도 늘어났고 방학중에도 중식 지원을 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많은 사회단체, 종교단체 들도 이들에 대한 사랑의 손길을 꾸준하게 펼쳐왔다.
가톨릭교회에서도 교구 산하 사회복지회나 각 본당, 복지관 등 시설과 병원 등을 중심으로 중식 지원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광범위하게 여러 가지 긍정적인 지표에도 불구하고 실직자나 저소득층이 입은 타격이 커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결식 학생들의 수는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늘어난 숫자에 비해 지원의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를 가야만 식사를 할 수 있는 이들 결식 학생들의 비참한 처지는 정부의 책임만도 아니며 오히려 우리 모든 국민들이 함께 책임을 통감해야 하는 문제이다.
근본적인 국가 사회복지제도의 정책을 모색하는 한편 모든 이들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려는 사랑의 마음가짐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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