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서에는 『나는 무엇이다』라는 식의 이른바 「예수님의 자기계시」말씀이 여럿 나온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이 그 예이다. 이 말씀들은 인류가 참된 생명을 얻는데 있어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밝혀주는 말씀들인데 오늘 주일에는 『나는 착한 목자이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목자」와 「양떼」를 생각하면,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넓은 들판에서, 양들이 싱싱하게 자라난 푸른 풀들을 한가롭게 뜯고 있는 그야말로 「목가적」풍경을 연상한다. 그러나 예수님이 활동하셨던 이스라엘에는 비가 적게 내리는 광야 변두리지역 같은 곳에서 양떼를 치는 목자들이 많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착한 목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의 배경도 열악하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런 어려움도 긴장도 없는 목가적인 환경보다는, 햇볕이 뜨겁게 내리뙤는데 마실 물도, 푸른 풀도 별로 없고 이따금 강도마저 등장하는 열악한 상황을 연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착한 목자」를 떠난다는 것은 양떼들에게는 곧 죽음을 의미한다.
「착한 목자」에 관한 복음을 듣는 오늘은 교회에서 전통적으로 성소 특별히 사제성소와 수도성소를 위해 기도하고 그에 대한 구체적 관심을 공동체적으로 표현하는 「성소주일」이다. 신자 공동체가 예수님처럼 양떼를 사랑하여 당신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착한 목자」들을 교회에 많이 보내주십사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날이다. 이렇게 성소주일을 맞이하여 「교회의 목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마땅하고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성소주일에 새롭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적어도 오늘 복음의 말씀은 (교회의) 목자들만을 대상으로 한 말씀이 아니라, 예수님 말씀의 청중 전체, 더 나아가 「그리스도 신앙인」전체를 염두에 둔 말씀이라는 사실이다. 「착한 목자」에 관한 오늘의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인간들인 교회의 목자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복음말씀의 원래의 뜻을 가릴 우려가 있다.
오늘 복음의 초점은 「착한 목자인 인간들」에가 아니라 「착한 목자이신 주님」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초점을 맞추고 더 마음을 써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착한 목자이시다』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이야 말로 비유에 나오는 「착한 목자」처럼 목숨까지 내어주시며 우리를 사랑해주시는 분이라는 것, 그분은 우리가 약해서 비틀거릴 때 우리를 찾아와 일으켜 세워 주시며, 우리가 방황할 때 우리를 찾아 나서며, 우리가 위험에 빠질 때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굳게 믿고 살아가도록 초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믿음은 신앙인이라면 누구에게나, 따라서 당연히 「교회의 목자들」에게도 요청되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서, 교회 안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착한 목자」이냐 아니냐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착한 양」이냐 아니냐를 먼저 반성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라면 누구나 어떤 직분에 잇거나 언제나 「주님의 제자」이며, 「주님의 양」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주님을 우리의 「스승」이요 「착한 목자」로 모시고 늘 그분으로부터 겸손하게 배우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따를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진정으로 주님의 소리를 알아듣고 따르는 『주님의 양』이 될 수 있는 사람만이 주님께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신자 공동체의 「착한 목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오늘 복음은 신앙공동체 전체가 교회의 「목자들」을 위하여 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도록 요청한다. 교회의 「목자들」이 여러가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실망하지 말고, 주 예수님을 그들의 「참된 목자」로 굳게 믿고 의지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자신들에게 맡겨진 양떼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만큼 양떼들을 잘 알고 사랑하는 「착한 목자」가 되도록 기도하기를 요청한다. 이런 기도에는 교회의 목자들이 혹시라도 유혹에 빠져 에제키엘 예언서 34장에서 말하는 자기 욕심만 챙기는 「악한 목자」가 되지 않도록 기도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성소주일인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제 성소와 수도자 성소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고 그것을 의식하며 살도록 다짐해야 하겠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복음 말씀에 나오는 삯꾼처럼 의무감에서 ㅁ마지못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을 마음 속 깊이 뜨겁게 느끼며 적극적으로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그리스도 신앙을 갖지 않은 분들 중에서도 훌륭하다는 분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천직(天職)」으로 여기며 최선을 다해 하고 있지 않은가! 누가 보든 말든, 개인적으로 고통과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들이 발견한 그 「가치」를 위해 온 삶을 불사르듯이 살아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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