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아름다운 5월, 성모성월인 요즈음 나는 생명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느낀다.
내 방은 5층 꼭대기에 있다. 남동쪽은 작은 창문에 다가서면 숲이 생명력으로 출렁거림을 느끼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신학원에서 이쪽 방향의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곳은 상록수가 거의 없는 숲이다. 그래서 겨울 동안에는 앙상하게 가지들만 있었다. 그런데, 봄이 되어 연두색의 작은 잎이 하나 둘 나오는 듯 하더니, 어느덧 요즈음은 그 곳이 햇볕도 잘 들어오지 못할 만틈 울창한 숲이 되어 있다. 작지만 「검은 숲」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더구나 심하게 가물다가 비도 몇 번 흠뻑 내리거니, 그 생명력이 더욱 왕성해 보인다. 저 깊은 뿌리에서부터 저 꼭대기의 잎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 쉴새없이 왕성하게 오르내리는 수액의 움직임이 보이고 들리는 듯 하다.
이러한 생명의 계절에, 부활 제5주일을 맞아 듣게되는「포도나무와 그 가지」에 관한 오늘 주일 복음의 말씀은 더욱 실감이 간다. 오늘 복음말씀은 요한 복음서 안에서 예수께서 수난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는 자리에서 그들 제자드에게 하신 일련의 고별-말씀들 중의 하나로서, 떠나가시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을 신신당부하는 어조를 띠고 있다. 그 요점은 『내 안에 머물라!』는 요청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오늘 복음말씀은 예수님의 제자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주님 안에 머무는 삶」이야말로 의미충만한 삶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오늘 복음 말씀 안에는 「머물다」라는 동사가 짧은 글 안에 여러 번 사용되어 있다(공동번역에는 「떠나지 않다」라고 의역되어 있음). 요한 복음서 안에서 이 「머뭄」의 주제는 중요하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머물라」라는 요청은 요한 복음서의 앞 부분에서 이미 나왔던 일련의 『머물라』라는 요청의 정점에 해당되는 말씀이다. 이미 첫 제자들을 부르는 대목에서도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려던 두 제자에게 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와서 보시오』(1, 39 참조 1,46 4,29)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갈릴래아에서 한 때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들이 크게 실망하여 많은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따라가겠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하는 베드로의 대답 곧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6,68)는 말씀도 『내 안에 머룰라.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과 맥을 같이한다.
이처럼 「주님 안에 머문다는 것」은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접촉」을 가진다는 것이 아니라 「포도가지가 포도나무(줄기)에 대하여 가지는 관계처럼」, 지속성(인내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교류가 이루어지는 「만남」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머뭄」은 「정체나 안주의 머뭄」이 아니라, 포도나무와 가지들 사이에 수액이 쉴새럾이 움직이는 것처럼, 지속적인 주님과의 사랑의 교류(친교)가 있는 머뭄이다(『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9절).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은 이러 저러한 일을 많이 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일들이 「주님과의 일치의 삶」에서 맺어지는 열매가 되도록 하는 것임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병고나 사고 또는 노약함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분들이 주님과 일치하여 충직하게 살아감으로써, 건강하여 바쁘게 지내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공동체를 위하여 오히려 훨씬 더 풍요로운 「열매」를 맺어 주는 예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다음 말씀처럼 말이다.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5절).
다음 말씀도 새겨 두어야 할 말씀 중의 하나이다. :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고 내 말을 간직해 둔다면…』. 영적으로 풍요로운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한다. 주님의 말씀은 마치 그 안에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씨앗과 같아서, 우리가 그것을 마음 안에 품고 있으면 언젠가 싹이 트고 자라나 많은 열매를 맺게 해 준다.
그런데 우리 각자의 마음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잇는 우리 공동체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랑, 기쁨, 평화」등의 영적 열매(참조: 갈라 5,22)가 주렁주렁 열릴 수 있도록 싱싱하게 자라는 나무가지의 모습인가? 아니면 여러가지 일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내적인 평화는 전혀 없이, 바짝 메말라 비틀어져 있는 나무가지들의 모습인가? 일을 많이 한다는 미명하에 마음들이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 가시덤불이 뒤엉켜 있는 듯한 모습이 되어 있지는 않은가? 그러나 혹시라도 우리의 삶이 그렇게 메마른 삶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자. 그러한 때일수록 「사랑의 주님과 일치하는 것」만이 의미있는 삶에 이르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용기를 내어 주님께 다가가자.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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