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미국의 낙태 합법화를 야기한 로 대 웨이드(Roe v. Wade) 소송 현장에 그가 있었다. 1974년 워싱턴DC 한가운데서 생명을 위한 행진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미주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낙태시술병원 앞에서 시위도 이끌었다. 낙태시술에 세금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막은 것도 그였다.
필립 레일리(Philip J. Reilly) 몬시뇰은 미국가톨릭교회 생명수호운동 역사의 산 증인이다. 1967년부터 오로지 생명을 살리는 일에만 매진했다. ‘여성들이 낙태가 아닌 자연분만을 택하도록 돕자’는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1989년 레일리 몬시뇰은 ‘하느님의 고귀한 태아들을 돕는 사람들’(Helpers of God’s Precious Infants)을 설립, 세계적인 생명수호운동을 펼치고 있다.
75세의 노사제는 오늘도 한 명의 태아라도 더 살리기 위해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8~15일엔 순회강연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파티마의 세계사도직 한국본부 본부장 하안토니오 몬시뇰의 초청으로 이뤄진 장이었다. 순회강연은 부산과 청주교구 꽃동네, 인천 등지에서 이어졌다. 강연 일정 중 가진 특별인터뷰에서 레일리 몬시뇰은 특히 한국의 생명운동가들에게 강조했다.
“진리 선포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나가서 만나십시오. 그러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온갖 시행착오를 다 치렀단다. 끝없이 소리치고 시위하고, 정치인들과 싸우고, 법안을 내거나 막고, 구속되고 법정에도 섰다. 온갖 투쟁에 혼신을 다했다. 하지만 어린 생명을 살릴 순 없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는 장장 22년간 이어졌다.
어느 날 그는 “왜 기도하지 않니?”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순간 그는 모든 일에서 손을 놓았다.
“늘 내가 원하는 방식을 찾아두고, 하느님께서 그것을 축복하시길 원했습니다. 그 목소리를 들은 후부터 ‘하느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바꿨습니다.”
레일리 몬시뇰이 설립한 ‘하느님의 고귀한 태아들을 돕는 사람들’은 태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단체다. 이 단체는 낙태된 태아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여성들이 낙태를 결심하지 않도록 돕는다. 결코 행동을 먼저 하지 않는다. 늘 기도하고 생각한다. 특히 낙태 위기에 처한 여성들에게 재정적, 의학적, 영적 도움을 다각도로 제공한다. 이러한 노력에는 아이 아버지를 찾아, 대화하는 노력도 포함돼 있다.
“낙태를 결심한 여성들을 죄인으로 보아선 안 됩니다. 그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갖고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처음 서너 명의 기도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설립된 이 단체는 11년 만에 미국 40개주 120개 도시를 넘어서 5개 대륙에 확산됐다.
레일리 몬시뇰은 인터뷰에서 “한국사회도 가톨릭교회가 말하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비인간화의 폐해로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레일리 몬시뇰은 “대중들 앞에 서서 진리를 선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미국에서도 실제 길거리에서 신자들이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기 전까진 ‘생명의 문화’를 향한 어떠한 진보도 없었습니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생명을 살리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가서 사람들과 만나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메시지를 갈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레일리 몬시뇰이 가장 우려하는 점은 ‘현대인들이 경험적 과학을 통한 설명만을 받아들이는 현실’이다. 그는 ‘해도 됩니까?’혹은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은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있는 일이니까’라며 무조건 해대는 과학지상주의를 경계한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실험실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사람들도 실험실에서 이뤄지는 성과들을 ‘발전’이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죽이는 행위입니다. 우리에겐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는 없습니다.”
생명을 죽이는 것도 가능한 일이니까 할 수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현 실태에 대한 따끔한 일침이다.
예를 들어 불임시술을 하는 과정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배아들이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불임시술의 폐해에 대해 잘 모른다. 아이를 가질 수 있고, 가질 자유가 있다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남용된 자유의지는 ‘죽음의 문화’만 끌어낼 뿐이다.
특히 레일리 몬시뇰은 현시대 젊은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무엇인가 이뤄야 한다고, 더 나은 성과를 내야한다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 존재 자체로 중요합니다. 무엇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귀하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가치없는 생명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생명 그 자체로 고귀한 존재입니다.”
레일리 몬시뇰은 “요즘 젊은이들은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명목에 내몰려 생명의 거룩함을 잃고 있다”며 “하느님은 어떠한 성과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먼저 보시는 분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의지와 자유가 무슨 목적을 갖고 있는지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이는 내 몸에 대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을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기술과 과학은 그리스도교적인 가치에 의해 인도될 때 희망찬 미래의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도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