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구 후배 신부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예전 기억에는 몸도 통통하고, 속된 말로 괄괄한 성격이었는데 그날 봤을 때는 몸도 많이 날씬해졌고, 성격도 차분해 보였습니다. 너무 달라진 모습에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
‘무슨 일 있냐고’하자 그 신부님은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의 의미를 알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지! 이제 갓 마흔을 넘긴 신부에게 인생을 달관한 듯한 말을 듣자, 호기심과 궁금증이 발동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무슨 일 있냐고. 그러자 그 후배 신부님은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형, 나는 사제로 살면서 그동안 참으로 많은 꿈을 가지며 살았던 것 같아. 그래서 머릿속에는 항상 뭔가 계획과 이상을 가득 채우고 다녔어. 특히 사제라면, 새로운 본당을 맡을 때마다 누구나 가지는 마음, 뭐 그런 거 있잖아. 발령 받은 본당에서 신자들과 함께 본당을 잘 꾸려나가고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내가 맡았던 본당을 떠날 때마다 느끼는 건데, 지나보면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된 것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 거의 날마다 원하지도 않던 일들이 생겨 오히려 당황스럽고 힘들기도 했고, 그러다가도 뜻밖의 행운이 찾아와 좋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기도 하더라. 10년 넘게 사제로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아. 어쩌면 마음이 넓어지는 것이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기도 하고.”
함께 공감하던 나로서는 그 신부님의 신학교 시절을 상기하면서 겸손하게 살았기에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라 말해 주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아냐, 형. 내가 얼마나 교만했는데. 아무튼 요즘 마음을 조금씩, 천천히 비우는 삶을 살고 있어.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몸도 가벼워지고, 성급했던 마음도 가라앉고, 사는 것이 나도 모르게 여유있게 되더라. 정말이지 살면서 어떤 일을 좀 더 잘해 보려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화도 내 보고, 소리도 질렀고, 분통도 많이 터져 했지만, 결국 그것마저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를 혹사시키는 과정이었더라고. 동시에 나를 혹사시켜서까지 목표 달성을 하려고 했던 일 중에 제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었어. 설령 그 일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일이 끝난 뒤의 수습이 힘들어서 내가 지쳐 못 살겠더라. 이젠 나를 좀 내려놓고 싶어. 허허허.”
성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더 성숙한 어른이 되려는 마음, 즉 제2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있나 봅니다. 그 후배 신부님의 말씀처럼 나를 혹사시키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으면서, 좀 더 나은 제2의 어른기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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