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민수기 10장은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두개의 은나팔을 만들 것을 명령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 은나팔들은 회중을 소집할 때나 진을 진행시킬 때 사용하는 기구였다. 육십만 명이 넘는 장정들과 여인들, 그리고 어린이들까지 합치면 엄청난 수효를 일사분란하게 통솔하려면 어떤 확실한 신호가 필요했을 것이다. 나팔은 인류 역사상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 도구 중 아주 오래된 것의 하나이다. 지금도 미국에서는 군인들의 취침, 기상, 식사시간 등을 모두 나팔로 알려준다고 한다. 무엇보다 『사람의 아들이 하늘의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오실 때』(재림) 나팔소리가 크게 울려 퍼질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마태 24,29~31).
일반적으로 민수기 제2부로 알려진 10장 11절부터는 출애굽 19,2에서 중단되었던 광야여행이 다시 계속되는 즉 시나이 광야를 떠나는 여행으로 되어있다. 모압평야까지 약 40년간 머나먼 광야 여행을 하면서 인간의 마음은 한치도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연약한 것,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되는 사건들이 줄줄이 일어난다. 야훼 외에는 다른 어떤 신(神)이 없다는 것을 체험했음에도, 위기를 맞을 때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불신앙에 떨어지고 만다. 온갖 불평과 불만으로 얼룩지어지는 역사가 바로 오늘 본문에서 시작된다.
「광야」는 이스라엘 신앙생활의 정화장소이다. 목마르고, 배고프고, 오히려 에집트의 고기 냄비가 그리워지는 광야 생활에서 불평과 불만은 광야의 주제가 되었다. 민수기를 일명 『불평의 책』이라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11장은 백성의 불평으로 온통 얼룩져있다. 에집트를 떠난 지 한달쯤 되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배고파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이미 하늘의 양식인 만나와 메추라기 고기를 내려주신 적이 있다(출애 16장). 그런데 이제 다시 불평을 늘어놓는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 들으시고 고기를 주시는데 『코에서 냄새가 나서 구역질이 날 때까지 먹게 될 것이다』라고 하신다(민수 11, 19~20). 모세는 늘 중재역할로 바쁘다. 백성들의 불평으로 불 심판이 내렸으나 모세의 기도로 꺼졌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모세라 할지라도 실의와 좌절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 많은 백성을 저 혼자서는 도저히 책임질 수 없습니다. 너무나 무거운 짐입니다.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민수 11,14~15). 오죽이나 힘들었으면 죽여달라고까지 하였을까?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칠십 장로를 세워 영을 내리시어 봉사하도록 하신다.
이제는 모세의 형제 미리암과 아론까지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맞았다고 하여 비판을 한다(12장). 옛날이나 지금이나 국제곃혼은 그리 흔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환영을 받지 못하였나보다. 그런데도 모세만이 야훼와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는 모세에 대하여 『땅위에 사는 사람가운데 그 만큼 겸손한 사람은 없었다』(3절)라고 칭찬까지 하신다. 이윽고 그토록 염원하던 곳 가나안 복지에 정탐대가 파견된다(13장). 각 지파에서 한사람씩 수령들을 바란 광야에 보낸다. 『정탐하고 돌아오는데는 사십일이 걸렸다』(13,25~26).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정직하게 보고를 한다. 그 땅은 정녕 젖과 꿀이 흐르는, 기막히게 좋은 땅이라고 보고하면서 『야훼께서 우리의 편이시니, 두려워하지 맙시다』(14,9)라며 가나안 땅으로 쳐들어갈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열 명의 다른 정탐꾼들은 힘센 아말렉과 가나안 사람들에게 질려 죽음이 두려워 그 고장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고 사람들을 선동하여 모세를 원망하였다. 이들은 야훼께 대한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만다.
우리 나라 국사에도 이와 비슷한 예가 있다. 1591년 선조 24년에 일본의 군사 움직임을 정탐하고 돌아온 통신사들 중 한 사람인 서인파 정사 황윤길은 일본이 곧 침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동인인 부사 김성일은 풍신수길의 전쟁가능성을 부인하였다. 김성일은 국서 원본에 『조선이 일본으로 신하의 예를 갖추지 않으면 군대를 파병할 것이다』라는 부분을 삭제하고 당파의 이익을 위해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허위를 보고했다. 결론적으로 임진왜란이라는 큰 국란을 초래한 것이다.
이제 백성들은 하느님 두려운 줄 모르고 하느님을 멸시까지 한다(14,11). 하느님께서 그 벌로 염병을 내려 없애버리시겠다고 하시자 모세는 이번에도 백성의 죄르리 용서해 주시길 기도 드린다. 인간의 죄보다 하느님의 연민의 정이 더 크시기에 끝없이 용서해주신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그칠 줄 모르고 불평에서 불평에로 거듭 야훼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드린다. 인간의 변덕은 하느님의 권능도 못당한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결국 변덕 많은 이스라엘 백성은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떠돌아다니다가 모두 죽고말 것이다. 오직 요호수아와 갈렙만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고 그 후손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된다. 가장 믿어야 될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시고 가장 믿어서는 안되는 자는 자기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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