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속칭 「아바이 마을」. 실향민들이 상당수 살고 있어 이런 명칭이 붙여졌다. 1500여 세대중 70% 정도가 실향민들로 애환과 아픔이 가득 서려있는 남한 최대 실향민촌이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많은 수가 살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도시로 떠나간 상황이라고 한다.
『어머님이 제일 보고 싶어요.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떠나왔는데. 이북에 두고온 가족들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려옵니다』
50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북에 잇는 가족을 잊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김연옥(안나·73) 할머니. 그의 입에서 「어머니」「가족」이란 말이 나오자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며칠후 만나자며 헤어진 가족들을 50년 넘게 보지 못하는 이 심정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거예요. 하지만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습니다』
김할머니의 고향은 함경남도 신포리. 그는 1·4후퇴때 당시 23세의 나이로 지금은 작고한 남편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기계 기술자였던 남편과 방어진에 내린 김할머니는 이후 포항을 거쳐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
하지만 즉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거라 믿었던 것이 큰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아무런 대책없이 피난길에 올랐던 이 부부는 추위와 배고픔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김할머니는 당시 겪었던 어려움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끔찍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고향에는 어머니(생존시 94세)와 남동생 2명, 작은 아버지 가족이 살고 있다. 언젠가는 그리운 가족들을 만날 수 있으리란 희망과 기대감으로 살아온 김할머니. 세월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듯 화사했던 얼굴엔 어느새 깊은 주름만 가득하다. 숨죽여 살아온 인고의 세월동안 그는 많은 이별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남편과의 사별 그리고 하나뿐인 다들이 죽음.
당시 독실한 불교신자로 남편과 사별 후 아들 하나만을 의지한채 살아온 김할머니는 청천벽력같은 외아들의 죽음마저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벌써 10여년전 일이군요. 그땐 너무나 가혹한 운명에 저도 따라 죽을려고 했어요. 이럴 때 이웃의 권유로 받아들인 신앙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열심히 주님을 믿으며 기쁘게 생활하고 있어요』
매일 기도때마다 남편과 아들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는 김연옥 할머니. 또한 눈을 감기전 한번만이라도 이북의 가족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드린다. 이러한 간절한 바람 때문일까. 최근 들려오는 남북정상회담 소식에 김할머니의 마음은 어느때보다 설레인다. 이제야 50여년 기다려온 간절한 소망이 이뤄질 수 있을거란 기대감으로.
현재 통일부에 따르면 남한에 살고 잇는 이산가족은 대략 7백67만명으로 추정된다. 이중 분단을 직접 경험한 이산1세대는 1백23만여명. 60대 이상의 고령 이산가족은 69만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중 이산가족 상봉은 96년 18건에서 97년 61건, 98년 108건으로 늘어났으며, 올해 5월말까지 만97건이나 된다.
북한에 아버지와 여동생을 두고 있는 김경애(68)씨는 『열세살 때 혈혈단신으로 남쪽으로 내려왔다』며 『이번 회담이 잘 마무리돼 죽기전에 가족들 생사라도 확인하고 싶다』고 밝혔다.
누나와 여러 친척들을 두고 왔다는 박임학(71)씨도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어머니와 함께 1·4후퇴때 남한에 내려온 그는 그리운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운명한 모친 생각만 하면 지금고 가슴이 아프다고 전했다.
박씨는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까지 이북에 두고온 누나와 친척들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면서 『더 늦기 전에 나라도 그리운 고향을 찾아가서 가족들을 만나야 어머니께서 기뻐하실 것』이라며 끝내 눈물을 터트렸다.
『실향의 아픔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 땅의 실향민들. 이들의 마지막 소원은 오직 하나 통일이 돼서 그리운 가족과 상봉하는 것이다. 50여년을 그리운 북녘땅을 바라보며 기다려온 「아바이 마을」실향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에 큰 기대감을 가지고 간절히 통일을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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