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정고요나(로사·서울 노원본당)씨는 주로 ‘공간’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텅 빈 공간에서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풍겨져 나온다.
실제로 벨라스케스 작품을 인용한 ‘벨라스케스의 방’(2009) 이전 작업들에서는 인생무상을 뜻하는 ‘바니타스’가 주요 스토리를 이룬다.
“16세기에는 허무주의가 유행했어요. 세상의 물질은 결국 모두 없어질 거라는 생각이 사람들 생각에 중요한 변화를 일으키죠. 현재의 많은 작가들이 이런 미술사에 영향을 받고 있는데, 저 역시 과거의 작가들 그림 속 공간을 그대로 가져와서 작업해 봤습니다.”
16~19세기 작가들이 만들어낸 창조적 색감과 오브제, 공간의 분위기를 가져와 ‘정고요나’화 시켰다. 정씨는 빛바랜 핑크색을 사용해 현재 진행되고 있는 혼돈의 시간들 속에서 상실감과 공허함을 무심한 듯 표현해내고 있다. 16세기에 유행했던 ‘바스타스’와도 연결된다.
최근에는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핑크색 공간 안에서 불안하게 있는 오브제뿐 아니라 어떤 상황의 흔적을 찾아가는 인간의 신체도 등장시키고 있다.
정씨의 그림에는 특징이 한 가지 있다. 대부분의 작품에 핑크가 꼭 들어간다. 핑크색이 그의 대표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씨는 “여성의 사회활동이 가속화되기 시작하면서 핑크색은 여성스러움 혹은 여성 존엄의 상징으로 굳어져버렸다”며 “언제부터인가 여자아이들은 핑크, 남자아이들은 푸른 계열을 집착하듯 선호하면서, 누구도 강요한 적이 없지만 사회적 신념으로 굳어져버린 여성과 핑크의 관계를 작업에 직접적으로 사용해 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핑크가 화사하거나 화려한 색이 아니라 ‘빛바랜’ 핑크임을 강조했다. 그는 “빛바랜 핑크는 말끔한 표면을 긁고 지나간 상처”라며 “사회가 특정 관념으로 고정하려 하지만 강한 외부 자극에 의해 빛바랜 상태가 되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즉, 그림 속에서 빛바랜 핑크는 상처와 불안감에 떨고 있는 현실 속의 우리를 대변한다는 의미다.
2001년부터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정씨는 2009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에 선정된 바 있으며 올해도 꾸준히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도 오는 5월 갤러리 큐리오묵에서 열리는 3인전 준비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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