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인 정진석 대주교의 방북에 대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6월 26일 교구장 집무실에서 정대주교와 인터뷰를 통해 향후 전망과 견해를 들어보았다. 정대주교는 이날 인터뷰에서 방북과 관련, 『갈 여건이 된다면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북한을 방북하고 싶다』고 밝히면서 『이를 위해서 앞으로 많은 논의와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와 그 의미는
▲ 우리 민족사에서 남북정상의 만남은 큰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2천년 대희년에 이러한 역사적인 회담이 성사됐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을 특별히 보살펴 주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회담이 성사되기까지 국민들의 염원과 수많은 실무자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렵게 만났고 또 공동성명을 만천하에 발표한만큼 이 합의사항이 구체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각별히 노력을 기울여주시길 바랍니다. 분명 이번 회담은 양국의 화해협력과 평화 통일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하지만 실제적인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협력과 관심이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남북화해는 국민들의 협력 선행
- 특별히 한국 교회 신자들은 회담과 관련해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
▲ 분단 55년만에 정상들이 만났다는 자체로도 의미가 깊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남북은 체제와 이데올로기가 확연히 달라 만남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죠. 따라서 하루 아침에 55년의 세월을 뛰어 넘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단계적 극복이 필요합니다. 정치적인 면은 이질적이기 때문에 조율하기가 어렵겠지만 문화나 체육교류 등은 비교적 쉽게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이나 국민들 모두 서로 이해심을 가지고 조금씩 그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봅니다.
종교인의 입장으로서는 대통령께서 성취하신 이 성과를 잘 뒷받침하기 위해 국민계몽 등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교회 나츰대로 지속적인 북한 돕기와 아울러 기도운동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의 이러한 나눔과 기도운동이 잘 전개될 수 있도록 모든 신자들이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 향후 대주교님의 방북 계획은
▲ 아직 북한으로부터는 공식적인 초청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관한 어떠한 논의도 현재로서는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의 입장에서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그쪽 여건이 그럴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북한은 기본적으로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사제란 용어조차 그들에겐 생소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이들을 돕기 위한 방문은 가능하고 또 희망합니다. 하지만 이에 관한 구체적인 작업은 충분한 의견 수렴과 주변 여건을 고려해 추진돼야 합니다. 이 점을 우리 신자들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종교의 자유가 있고 여건이 좋다면 문제가 없지만 북한은 아직 종교적인 풍토가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교회가 「침묵의 교회」에 대해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선교에 앞서 그 전 단계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가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로서 방북 어려워
- 그렇다면 대주교님의 방북을 위해서 어떤 전제 조건들이 선행돼야 하는지
▲ 현재 북한에 신자수가 얼마나 되는지 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이 분단되기 전 당시 남북한 신자 19만여명 중 북한 신자가 5만 7천여명이었습니다. 그 후 55년의 세월이 흘러 현재는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당시의 성직자나 수도자들, 평신도 지도자들이 생존해있더라도 모두 고령입니다. 북한의 유일한 성전인 장충성당의 예를 보더라도 사제가 없습니다. 이런 것으로 살펴볼 때 북한에 사제가 없을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교회가 교회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신자들도 있어야겠지만 사제도 필요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해 그동안 교황청에서는 이전부터 수차례 한국 사제가 아니더라도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외국인 사제의 북한내 상주를 누차 북측에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얼마전 바티칸의 피데스 통신에서 교황 성하의 방북 조건으로 가톨릭 교회의 인정을 지적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입니다.
현재 북한은 성직자 없는 교회뿐
- 바티칸 피데스 통신에 따르면 교황 성하의 방북 조건으로 가톨릭 교회 인정과 더불어 대주교님의 방북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여기에 대한 견해는
▲ 남북 정상의 회담이 있기까지는 양측 실무진간에 상당한 의견 조율이 뒤따랐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의 방북을 생각해보면 될 것입니다. 교황 성하께서 만약 북한을 방북하신다면 이를 위한 사전 준비작업이 필요합니다. 북에 가셔서 어떤 주제로 어떤 말씀을 나누실지, 그리고 누구를 만나고 일정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준비가 선행돼야 합니다. 교황 성하의 방북이 단순히 방문하시고 그냥 머물다 오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쪽 실무진과 의견 조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교황청에서는 평양교구장 서리인 제가 우선 그곳 정황을 살펴보고 실무진들을 만나 함께 의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그런 조건을 내건 것으로 봅니다.
북녘에 평화 메시지 전달 희망
- 교황 성하께서 방북하신다면 그 의미는 어떤 것인지
▲ 교황 성하의 방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가 국제법상 국가원수 자격이고 두 번째가 천주교의 으뜸으로서 즉 그리스도의 대리자 자격으로 사목적 의미가 부여됩니다. 통상 지금까지 관례로 볼 때 교황께서는 이 두가지를 적절히 조화시켜 다른 나라를 방문하시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쿠바의 경우 교황 성하늬 방문전 가톨릭 교회를 인정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황께서도 신자들이 운집한 가운데 직접 미사를 집전하시고 또 쿠바에 종교의 자유가 허용돼야 한다고 강력히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황 성하께서 하셔야할 몫이기도 합니다.
교황께서는 이미 교황청 실무자나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을 방문하고 싶으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계 유일한 분단 국가에 가셔서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북녘 형제들에게 전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는 이런 기반이 조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의미 부여 측면에서 어려움이 딸르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교황께서 북한을 방문하시게 된다면 북한이 가톨릭을 인정한다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양측이 신중하게 대처할 수 밖에 없습니다.
- 만약 교황 성하께서 방북하신다면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시는지
▲ 김대통령께서도 2박 3일이란 짧은 기간동안만 북한을 방문하셨습니다. 교황께서도 고령이신데다가 다른 나라를 방문하셨을 때도 짧은 일정으로 계시곤 했기 때문에 대체로 그정도 일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북한을 방문한다면 중국도 함께 가시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세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12억이란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은 교회적인 차원에서 분명 「선교의 텃밭」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중국은 애국 교회 주교가 70명, 지하 교회 주교가 60명에 신자수만도 1천만명에 달해 아시아 교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을 함께 방북하시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 교황 성하와 대주교님의 방북과 관련해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씀은
▲ 우리 신자들이 방북과 관련해 너무 들떠있고 쉽게 생각하는 면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럴때일수록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당장 무엇이 될 것 처럼 흥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분명 교황님과 저의 방북이 성사된다면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입니다. 그러다해서 교회 입장에서 보면 그냥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교회 최고 지도자의 방북은 큰 의미와 효과가 있겠지만 수차례 지적했듯이 현재 북한의 여건으로서는 교회 사목자의 방북이 신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자분들도 이러한 교회적인 입장을 충분히 감안해주셨으면 합니다.
분단 현실 냉철하게 직시
-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 문제가 큰 주제로 부각됐습니다. 여기에 대한 평가는
▲ 이산가족 문제는 실향민들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아픔입니다. 양국도 이런 점을 고려해 가장 시급히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50여년간 고향에 두고온 가족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땅의 실향민들이 고통을 받았습니까. 앞으로 양측의 적극적인 협조하에서 많은 이산가족들이 그리운 가족들과 고향땅을 방문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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