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을 완연히 느낄 수 있는 4월 첫째 주. 나뭇가지의 새싹이 겨울의 추위와 싸워 이기고 막 돋아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추위를 극복하고 움터 나오려는 새싹들에게 수고했다고 인사하는 여유를 가져봄이 어떨까 합니다. 이런 여유를 가지면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참된 회개와 보속의 시간을 은혜로이 가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눈먼 사람을 고쳐주신 것을 문제 삼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현장에 ★눈멀었던 사람 ❶이웃 사람들 ❷바리사이들 ❸유다인들 ❹눈을 보게 된 사람의 부모가 등장합니다. 이 인물들 가운데 누가 옳고 바르며, 참 신앙인으로 성장해나가는지 정확히 나타납니다.
❶이웃 사람들은 자기들이 지금까지 보아온 소경이 치유된 것을 보고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묻습니다. 이에 ★눈멀었던 사람은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대로 했더니 보게 되었다는 것’과 ‘그런데 예수님께서 지금은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다는 것’을 이야기해줍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이웃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치유받은 소경을 바리사이들에게 데리고 갑니다. 예수님께서 진흙을 개어 그 사람의 눈을 뜨게 해준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❷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치유해주신 경위를 다시금 확인하고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이 죄인의 행동이었는지 아닌지 논란을 벌입니다. 그에 대한 결론이 나지 않자, 바리사이들은 눈멀었던 이에게 “당신의 눈을 뜨게 해준 이를 누구라고 생각하오?”라고 다시 묻습니다. 이때 ★눈멀었던 사람은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라고 주저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❸유다인들은 이러한 광경을 지켜보고는 치유된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어떻게 그가 보게 되었는지 묻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렇게 했다는 증거를 얻으려했으며, 또한 치유된 소경과 그 부모를 모두 예수님과 같이 고발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❹눈을 보게 된 사람의 부모는 유다인들에게 ‘그가 자신들의 자녀이며,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라고 진술합니다. 그러나 그 부모는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는 모른다고 하며, 직접 물어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부모는 유다인들이 두려웠기에 회피성 대답을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 사이에서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부모는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❷바리사이들은 그 부모가 이렇게 회피성 발언을 하자, 눈이 멀었던 사람을 불러 예수님을 죄인으로 인정하라고 설득합니다. 그러나 ★눈멀었던 사람은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 저는 모릅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 제가 눈이 멀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압니다.”라고 확고히 대답합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묻는 말에, ★눈멀었던 사람은 “당신들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것입니까?”하고 반문합니다. 이에 ❷바리사이들은 그 사람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하게 부인합니다. 이 말을 듣고, ★눈멀었던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고쳐준 사람을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수님은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분이며, 하느님에게서 오신 분’임을 고백합니다. 이 말에 ❷바리사이들은 “당신은 완전히 죄 중에 태어났으면서 우리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이오?”하고 그를 밖으로 내쫓습니다. 그가 밖으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너는 나를 믿느냐?”하고 물으십니다. 이에 ★눈멀었던 사람은 “주님, 저는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경배합니다.
이 사건의 현장에서 시비를 바로잡고, 사실과 진리를 옳게 증언하며, 최종적으로 예수님의 사람이 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눈멀었던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의 눈으로 보지 않고, 고정된 틀 속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만 보았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돌아가시게 하였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자신은 어떤가 생각해보니 내 방식대로 보아 잘못 판단하여 상대방을 곤경에 빠뜨린 경우가 많았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주에는 그동안의 잘못을 뉘우치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바치지 않으시겠습니까?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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