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론
97년 정축년은 유엔이 제정한「외국인 노동자의 해」다. 현재 한국 내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약 2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대부분 불법체류 노동자들로 임금 체불, 산재 미비, 여권 압류, 주거 제한 등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노동은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아무리 이방인이지만 그들에게도 이것은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복음정신에 입각, 본보는 한국 내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그 대안을 찾기 위해 다각적인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본보는 앞으로「우리도 한때는 외국인 노동자」였던 시절을 되짚어 보고 외국의 이주노동자 정책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므로서 한국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의 문제점과 그 대안을 교회적 시각에서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노동력 수출국의 범주에 속해왔다. 즉 우리도 한때는 갖은 고생을 다하며 외화를 벌었던 때가 있다는 얘기다.
지난 60년대 서독이나 일본 더 나가 하와이와 괌 등지에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야 했던 우리의 과거사를 회고해 보면 현재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한국 내「외국인 노동자 문제」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외국인 노동력이 유입되기 시작한 88올림픽 이후 불과 5~6년 사이에 2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게 되면서 갖가지 모순이나 인권침해 사례들이 발생했다. 즉 한국에서 이민노동자 지원활동이 시작된 지는 불과 4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만큼 경험과 일손이 부족한 상태다.
한국 내에서 외국인노동자 대책활동이 시작된 것은 1992년 5월 말「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이 상담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이때부터 한국 내에서는 외국인들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도와주기 위한 단체가 생겼다.
한국 천주교 역시 이즈음 서울 명동「외국인 노동자 상담소」를 시작으로 인천과 수원 지역에 상담소가 개설되어,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교회는 한국 내에서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복음적 견지에 따라 그들의 권리 옹호에 부족하나마 힘을 모으고 있다. 서울 상담소를 중심으로 매년 정월 초하루와 추석 연휴를 이용, 외국인들에게 축제를 마련해 주고 이들을 국가별로 묶어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는 등 그동안 한국 교회는 나름대로의 일을 추진해 오고 있다.
주로 교회 내 상담소들의 역할은 임금 체불, 산재, 송금 등의 문제에 개입, 이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상담을 하고 있고 때에 따라서는 불거진 문제에 직접 나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전통적으로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해온 교회는 복음정신에 입각해 그들이 이국 땅이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상담 등 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많은 이들은 최근「외국인 고용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더군다나 유엔은 97년을「외국인 노동자의 해」로 정해 이들을 인권적 차원에서 보호해 줄 것을 전 세계에 선포하고 있어 이들의 문제가 세계화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의 발단은 송출업체나 중간 브로커들의 농간이나 착취에 이들이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즉 이들은 고용과정에서부터 공공성과 공익성, 효율성이 사라지고, 불법적 착취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
정부가 나서 추진한 산업 연수생과 불법 취업자들은 현재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장에서 정당한 노동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임금 체불, 산재보상 미비, 외부출입 통제, 여권 압수, 욕설과 구타 등 노동 인권을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
95년 1월 초 엄동설한에 명동성당 구내에서 진행된 외국인 산업기술 연수생들의 간절한 호소는 이들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한 예다.「때리지 마세요」「월급 주세요」「우리도 인간입니다」라고 절규했던 이들의 모습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절대 이래서는 안 된다」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이 사태 이후 정부는 근본적 제도 개선책을 수립하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으나 이 문제는 더욱 불거진 상태다. 여론이 가라앉자 정부의 의지는 실종되었으며 기존 연수제도의 문제점을 그대로 온존시킨 채 외국인 연수생의 대폭 확대 도입이 추진되었다.
현재 교회 내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에서 수 년간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실무자들은 『산업기술 연수라는 미명 아래 시행되는 편법적인 외국인 노동자 도입의 무분별한 확대 정책이나 열악한 근로 조건과 비인도적 처우를 방조하는 정책은 즉각 시정돼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교회 역시 이들에게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접근해 나가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교회는 당장 이들이 국내에서의 권리 확보에만 주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귀국을 앞두고 있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귀국 후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바라는 1997년 새해 소망 - “밝은 하늘 아래서 떳떳하게 일하고 싶어요!”
사기 당하고 매도 수없이 맞아 억울한 일도 많지만 희망 가득
또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어수선하지만 모두가 마음 한 구석에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기 위한 다짐을 하는 때이기도 하다.
더구나 자신이 꿈을 실현키 위해 만리타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덧없이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가 생각 날 때이기도 하다.
막노동판에서, 열악한 사업장에서 힘든 노동을 하고 있는 이들은 고향 하늘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적실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지난 92년 초 한국에 온 네팔인 스레스터(Shrestha·34)씨는『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한 곳에서 가족들과 2시간 이상의 전화 통화를 한 적도 있다』고 회고하면서『연말이 다가올수록 더욱 고향의 식구들과 애인 생각이 간절하다』고 토로했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은행원으로 근무했던 그는『한국에 오기 전 한 달 월급이 한국 돈으로 4만 원 정도였다』고 밝히면서『고생은 되지만 4년 동안 3천만 원 정도를 집에 송금했다』며 밝게 웃었다.
스레스터씨에게 한국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다. 비록 막노동판에서 힘든 일을 하지만 한 달 1백30만 원에서 1백50만 원 정도를 버는 그다. 네팔에서는 꿈도 못 꿀 정도로 많은(?)돈을 벌면서 힘든 일을 이겨내는 이유는 그가 갖고 있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6개월 뒤에 귀국할 예정인 스레스터씨는 귀국 후 결혼을 올릴 예정이다. 그래서 힘들지만 번돈을 꼬박꼬박 고향으로 송금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대체적으로 만족스럽다는 스레스터씨. 힘든 노동일 뒤끝에 희망이 있었기에 그의 노동자 생활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생활이 좋은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한국에 와서 마석공단에서 일을 했다는 그는 한국인에게 철저하게 이용 당했다.
먼저 온 네팔 친구들로부터 소개 받은 한국인 김석규씨가 바로 그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친구들이「아버지 아버지」하고 따를 정도로 그들에게 잘했던 김씨는 점차 이들에게 여러 명목으로 돈을 빌려갔다. 한국 말도 모르고 송금 방법도 몰랐던 그들은 돈을 갖고 있기보다 아버지 같은 김씨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에 빌려줬다. 그러나 김씨는 이들의 피와 땀이 서린 돈을 그대로 갖고 달아나 버린 것. 이렇게 해서 그가 날린 돈이 1백여만 원 정도다. 얼마 안 되는 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나 큰 돈이었다. 네팔에서 4만 원의 월급을 모아서는 쉽게 구경하기 어려운 돈이다.
스레스터씨는『정말 억울한 일도 당했지만 여기서 만난 한국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너무 좋았다』고 말하면서도『나를 포함 우리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 발전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고 자부심을 보였다.
한국인에게 사기도 당하고, 이유없이 매를 맞기도 했다는 그는 아직도 한국에 희망을 갖고 있다. 물론 불법 체류자로 떳떳이 나서지는 못하는 형편이지만 한국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우리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는 대신 한국 정부도 우리들에게 법적 보호를 해주었으면 한다』고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 수급을 통해 이익을 챙기고 있는 브로커들을 정부가 나서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스레스터씨와 함께 만난 네팔 외국인 노동자 공동체 대표를 맡고 있는 구릉(Gurung·30)씨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네팔인 노동자 공동체는 현재 11개의 조직 대표들이 매달 한 번씩 만나 자신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모임을 갖고 있다.
세밑 이들이 갖고 있는 바람은 단순하다. 내년에는 좀 더 떳떳하게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범법자처럼 더이상 숨어서 일하기 싫다는 얘기다. 정축년에는 소처럼 열심히 일하는 이들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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