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탈주민부터 관심을 갖자】
94년 9월에 제3국을 통해 귀순해 왔던 김형덕(22세)군이 남한 사회에 적응을 하지 못해 지난해 북한으로 되돌아 가려 했던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귀순자의 월북 시도
물론 북한 이탈주민(귀순자 및 탈북자)들의 전체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생명을 무릅쓰고 선택했던 남한 사회를 다시 버릴 수밖에 없었던 김형덕군의 결정은 분명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인식되기는 했지만「남북한이 함께 살아야 할 통일사회를 내다보는 앞날이 결코 밝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는 결과가 되기도 했다.
특히 많은 사람들 중에는 김형덕군의 사례를 접하면서 남한에 내려와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몇 안 되는 북한 이탈자들도 품어안지 못하면서 통일 후 북한 주민들과 어떻게 동포애를 나누고 화합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반문하고 있다.
북한 이탈자들은 투자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유로운 경제활동 및 소비자를 중심으로 하는 선택의 자유, 사유재산 제도를 통해 개인과 사회가 발전하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매우 낯설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들을 파악하고 익숙해지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마련이다.
북한 이탈주민들이 우리 사회에서 통일 후 반 세기에 걸쳐 이질화된 사고와 사상 관습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갖는 이들에 대한 관심은 극히 저조한 편이어서 90년 이후 귀순해 온 1백60여 명에 이르는 북한 이탈주민들 대부분이 남한사회의 물리적이고 인위적인 결합에 의존한 채 기름처럼 겉도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 이탈주민들은『남한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이웃을 만나느냐는 것은 남한생활에 쉽게 적응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문제로 직결된다』고 말하고 남한 사회에 무리없이 적응하고 있는 경우 주위의 따뜻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에 누구의 관심도 닿지 않은 채「남한이라는 생소한 자본주의 집단에 외롭게 던져진 존재」로 남아 있던 북한 이탈주민들은 하나같이 폭행이나 강도 등 범죄행위를 일삼거나 아니면 직장도 구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날품으로 연명해 나가기도 한다.
▲여만철씨 적응 성공
대표적으로 지난 93년에 일가족 5명이 함께 귀순해 온 여만철씨 일가의 경우, 처음부터 교회가 관심을 가짐으로써 단시일 내에 가장 성공적으로 남한 사회 적응에 성공하고 있는 케이스로 유명하다.
이들 가족들은 현재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 등의 도움으로 주택을 마련했는가 하면 직장을 알선 받아 직장생활을 착실히 하고 있고, 아이들도 원하는 대학에 진학, 큰 불편없이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여하는 단순히 북한 이탈주민의 남한 사회 적응을 돕자는 차원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이들에 대한 관심을 통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 통일을 위한 마음의 준비, 정신적인 준비를 한다는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민족 분단의 장벽 속에서 굳어진 갈등과 적대감을 조금씩 해소하기 위해서는 북한에서 살다가 남한에 내려와 살고 있는 이웃들 간에 먼저 화해하고 정을 나눔으로써 서로의 골을 메꾸어 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잘못 교육되어진 남북한에 대한 바르지 못한 시각을 교정하고 아울러 북한에서 살아본 북한 이탈주민들의 입장과 생각을 통해 가장 부작용이 적은 통일 사회를 점진적으로 준비하는 차원에서 북한 이탈주민들에 대한 연구와 관심, 사랑을 쏟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 이탈주민에 대해 정부 및 민간단체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할 몫이 있겠지만 특별히 종교단체 차원에서는「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다는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나름대로의 몫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회는 고아들이 많을 때는 고아원을 설립했고 학교가 없어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을 때는 학교를 지어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했듯이 이제 교회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 통일이라는 대명제를 위해 남과 북 간에 드리워진 불신을 허물고 깊이 패인 갈등의 골을 메꾸는 데 모든 역량을 결집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귀순자는 우리 이웃
그렇다면 당장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교회 관계자들은 비록 작은 힘이지만 우선 남북한 주민 간에 화해를 놓는 초석으로써 남한에 살고 있는 북한 이탈주민들을 껴안는 노력부터 경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단순히 북한 이탈주민 한두 사람을 신자로 만들겠다는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 남한과 북한 동포들이 함께 살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운영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남북이 통일됐을 때 혼란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최소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북한 이탈자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오혜정 수녀는『이러한 프로그램이 있을 때 앞으로 닥쳐올 혼란을 슬기롭게 극복해 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이해의 접점이 없어져 혼란에 함께 휩싸여 버리게 된다』고 우려했다.
▲교회 내 전담기구도 필요
한 통일문제 전문가는 이런 맥락에서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나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 등에 이들을 위한 전담기구의 설치도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이런 전담기구를 통해 북한 이탈자들의 상설 대화의 장도 마련하고 경제적 물질적 지원, 직업 알선 등 구체적인 도움의 손길을 비롯 장래 통일을 대비한 화해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 등도 펼쳐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행히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 산하에 구성된 북방선교협의회는 지난해 12월 30일 13개 회원 수도단체와 13명의 북한 이탈주민 간의 뜻 깊은 결연식을 마련, 교회 내에서는 처음으로 결실을 맺기도 했다. 일부 개신교 단체에서 신자화를 목적으로 결연을 맺었다가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도록 순수한 동포애적인 사랑에서 출발한 이번 결연은 진정한 의미의 북한 이탈주민의 남한 사회 적응과 남북한 주민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구현해 나가기 위한 노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북방선교협의회와 북한 이탈주민 간의 이번 결연은 장차 각 수도단체와 각 본당이 북한 이탈주민을 한 사람씩 맡아 돌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낳게 하고 있다.
◆벌목공 출신 귀순자 박일섭씨 - “남한생활 적응에 민간·종교단체 도움 절실”
직장없어 늘 불안 농협 등에 취직 희망 “평범한 이웃으로 대해 주길”
『정부로부터 받은 정착금을 더 불려 나가야 하는데 까먹고 있어 불안하고 직장이 없다 보니 마음을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러시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다 95년 1월 동료 2명과 함께 국내에 들어온 박일섭(38세)씨는 이제 어느 정도 한국생활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직장이 없어 늘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임대아파트를 얻어 생활하고 있는 박일섭씨의 수입은 가끔씩 강연회 연사로 나가 받는 수고비가 전부인 셈이며 현재는 운전학원 강사, 막노동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울대교구의 한 신부를 만난 것이 계기가 돼 김 추기경의 노력으로 귀순하게 된 박일섭씨는 함께 온 동료들 중 2명은 이미 직장을 얻어 나름대로 남한생활에 재미를 붙이며 살고 있어 부럽다며 자신도『농협 등에 취직이 됐으면 좋겠다』는 강한 희망을 피력했다.
특히 박일섭씨는 같은 북한 이탈주민 중에는 당국의 보호가 끝나는 기간 이후 경찰에서 2년간 보호를 받고 있을 때『담당 형사가 어느 정도 취직 등 남한 사회 적응에 적극적이냐에 따라 북한 이탈주민의 남한 사회 적응 정도가 큰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며『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담당 형사로서는 한 사람의 이탈주민을 맡기에는 무리가 없지 않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박일섭씨는 앞으로 있을 북한 이탈주민에 대해서는 경찰이 직장 알선이나 남한 사회 적응 등을 맡기보다는 민간단체나 종교단체 등에서 맡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박일섭씨는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 산하 북방선교협의회가 마련한 수도단체와 북한 이탈자 간의 결연은 북한 이탈주민의 남한 사회 정착에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박일섭씨는 현재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에서 추진 중인 북녘 동포들과의 국수 나누기운동 등은 어떤 차원에서라도 적극적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주문하고『조건없이 나누는 마음이 앞설 때 통일은 스스로 찾아온다』고 강조했다.
남한 사회에 더욱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신학기부터 동국대 북한학과에 입학하기로 했다는 박일섭씨는 한국생활 중 가장 부담스러운 것은『전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생각을 하고 대해주는 그 자체』라고 말하고『그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를 대해주는 마음으로 북한 이탈주민들을 대해 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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