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별 통일 사례로 본 교회의 역할】
강대국의 힘에 의해 동서로 갈라졌던 독일이 90년 10월 3일 통일됨으로써 결국 우리만이 중국과 더불어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으로 남게 됐다.
특히 우리는 남북이 분단된지 반 세기를 넘긴 지금까지도 통일의 실마리는 커녕, 아직 대화의 물꼬마저도 트지 못한 채 아쉽게도 상호 불신만을 가중시켜 오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서울대교구 등 교회 일각에서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돌려 민족화해위원회 등을 발족해 본격적인 민족의 화해와 일치, 통일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지만 반 세기에 걸쳐 단절된 민족의 대동맥을 잇기 위한 노력으로는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의 노력이 줄기차게 이어질 때 갈라진 민족의 화해와 일치는 서서히 회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며 정치적인 그 어떤 영향력보다 민족의 통일과 화해 일치에 지대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독일 통일에 있어 우리는 통일을 위해 기울인 독일 교회의 노력을 생생한 경험으로 인식하고 있다.「통일을 위해 기울인 노력 만큼 통일은 빨리 찾아온다」는 교훈을 새겨 줄 정도로 독일 정부와 교회가 통일을 위해 기울인 노력은 실로 엄청나다. 그러나 이미 오랜 내전으로 남·북 서로 간에 깊은 골을 메우기 어려웠던 베트남의 경우 교회의 통일 노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대표적인 분단국이었다가 통일을 이룩한 독일과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 있어서 과연 가톨릭교회는 어떤 식으로 참여하고 기여했는지 그 사례를 통해 한국 교회의 통일 노력을 다시 한 번 촉구해 본다.
◆독일 교회의 역할
서독 교회의 동독 교회에 대한 지원과 원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대규모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서독 주민의 약 49%에 달하는 신자들이 개별적으로 동독 교회에 쏟아부은 지원금만 해도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만큼 엄청나다는 것이 사실이며 실제로 서독 교회가 공식적으로 동독 교회에 지원한 금액은 매년 1억 내지 1억5천억 마르크(약 5백억 원 내지 7백50억 원)에 달할 정도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공식적인 기구를 통해 동독 교회에 전해진 지원은 주로 이러한 금전적인 지원과 영성적인 지원으로 구분된다. 특별히 서독 교회는 교구별로 동독 교회와 자매결연을 체결, 1개 교구씩 책임지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동독의 경우 엄연히 교회가 존재, 주민 중 7% 정도가 가톨릭 신앙생활을 계속 유지해 왔었기 때문에 우리와는 사정이 크게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독 교회의 동독 지원에 대해 우리와 같은 정부의 제재나 창구의 일원화와 같은 명목으로 서독 정부가 동독 교회 지원을 막지는 않았다. 어떤 명목으로 동독에서 쓰여지던 같은 민족이 사용하면 된다는 열린 사고로 동독 교회에 대한 서독 교회의 지원을 허용해 왔다.
따라서 서독 교회에서는 주교회의와 각 교구별로 전개해온 지원 외에 가톨릭실업인회, 까리따스, 가톨릭노동운동기구와 여성 단체 등 수많은 단체에서도 나름대로 독자적인 지원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서독 교회의 대표적인 해외원조 단체인 까리따스와 미제레올, 미씨오 등의 경우는 해외원조와 세계 각국의 사회개발 및 인간 개발사업에 대한 지원은 그대로 두고 동독 교회만을 돕기 위한「레노바비스」라는 원조 기구를 별도로 설치, 동독 교회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통일 전 서독 교회의 지원으로 동독에는 37개의 병원이 설립됐으며 45개의 유치원, 양로원을 비롯 신학교와 가톨릭아카데미, 준 신학교 등 수많은 건물들이 건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이러한 개별적인 지원에 대한 모든 조직적인 관리는 주교회의 차원에서 해왔다고 한다.
개별적인 지원을 적극 장려하면서도 지원에 따른 효과를 서독 교회 전체가 공유하고 업무의 효율성과 능률, 중복 지원의 폐해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주교회의가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원에 힘입어 동독 교회는 사회주의 체제하에서의 많은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교회로서의 생명력과 교회 구성원 간의 끈끈한 유대 관계를 유지, 동독 교회 스스로도 독일 통일을 대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베트남 교회의 역할
베트남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은 독일의 경우에 비해 매우 다른 양상을 띰으로서 베트남 통일 후 교회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으로부터 혹독한 시련을 당하는 구실이 되기도 했다.
베트남은 과거 70여 년에 걸친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가톨릭적 기반이 강하게 형성됐으며 아울러 티우 대통령을 비롯한 2명의 신자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가톨릭교회가 기득권 집단으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교회는 기득권층에 안주, 통일에 적극적이기보다는 현실 안주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해 교회로서의 통일 노력에 별다른 관심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베트남이 1975년에 패망하자 가톨릭교회는 기득권층과 함께 휩쓸려 가장 혹독한 박해를 받기에 이르렀다. 반면 베트남이 통일되기 전 가톨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정 받지 못했던 불교는 가톨릭교회와는 반대로 통일 베트남에서 현재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교세 확장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통일이 된 이후 이미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가톨릭교회와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 간에는 미움과 불신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당시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채로 봉합돼 있는 형편이다.
심지어 베트남 고위 공무원 중에는 가톨릭 신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베트남 정부와 교회와의 관계는 껄끄러운 형편에 놓여 있다.
◆교훈
독일과 베트남의 사례로 본 교회의 역할을 살펴볼 때 각 교회의 역할은 크게 구별될 정도로 대조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독일의 경우 같은 동포로서 조건없는 나눔을 실천, 교회로서의 착실한 역할을 수행해 온 반면 베트남의 경우 현실 안주에 급급한 나머지 통일을 대비한 교회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베트남 교회는 통일에 역작용을 초래, 통일 후 설 자리를 스스로 잃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역사적인 교훈에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 두 나라의 통일 과정에서의 교회 역할을 보고 어떤 모습을 배워야 할까?
우선 지난 반 세기에 걸쳐 교회가 행해 온 통일에 대한 역할이 있었는지 반성해 보고 베트남과 독일 교회의 역할을 경험으로 삼아 통일에 실제적으로 기여한 국가를 모델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물론 독일과 베트남은 많은 부문에서 우리의 현실과는 경제적 격차와 함께 민족성,국민 감정, 북한의 폐쇄적 상황 등에 엄연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통일을 향한 노력에는 크든 작든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며 상황이 어려울수록, 독일보다 더 어려운 여건일수록 그보다 더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베트남 교회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교회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경주해야 한다.
서독 교회가 동독 교회와 자매결연을 맺어 1개 교구씩 책임지고 도왔다면 우리는 현실적으로 자매결연이 어려운 점을 감안, 각 교구가 각기 한 지역씩을 맡아 미리부터 통일을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울 러교회 내 각 액션 단체들을 비롯 병원과 학교 등은 자신들의 고유 성격과 유사한 통일 준비를 미리부터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가톨릭실업인들도 기업 경영을 우회 전략으로 삼아 교회가 공식적인 노력을 전개하기에 앞서 사전 기반을 다지는 정지작업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서독 교회가 동독을 지원할 수 있었던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서독 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한결같이 동독 교회를 남의 교회로 생각하지 않았고 이를 생활 속의 신천을 통해 물심양면으로 도왔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서독 정부의 아무런 제약없는 동독 지원 허용이다.
오히려 도움을 받아야 할 동독에서 선별적으로 도움을 수락했을 정도며 서독 정부는 일체의 간섭과 제약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독일 정부의 관용에 비하면 많은 부분에서「과연 통일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의심이 갈 정도로 정치적 계산에 따라 지나치게 소극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상대와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가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먼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처럼,「우리가 통일을 원한다면 먼저 북한 동포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노력과 실천이 앞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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