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문제 해결을 위한 교회 역할
한국 천주교회는 지난 92년 가을 외국인 노동자문제가 막 사회문제로 떠오르려는 시점에 서울대교구 외국인노동문제상담소를 명동에 설치, 이들 문제에 대해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90년대 들어서면서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문제가 단순한 노동문제를 떠나 인권 침해에까지 미치고 있는 당시의 상황에서 교회는 복음적 견지에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서울을 필두로 93년에 인천, 95년에 수원교구가 각각 교구 내에 외국인노동문제상담소를 개설하는가 하면 기존의 노동관련 센터들로 외국인 노동자와 관련된 업무를 늘리는 등 교회는 현재까지 이들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더구나 서울대교구는 지난해 12월 19일 미아4동에 외국인 노동자들의 쉼터인「베다니아의 집」을 열어 몸과 정신이 지친 외국인들이 이 집을 통해 안식을 얻도록 배려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교회 내 상담소의 역할은 임금 체불, 산재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 등을 상담하고 해결하는 일이며,「노동 허가제」등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 제정과 같은 대 정부, 대 사회 홍보활동을 병행해 나가고 있다.
서울대교구 외국인노동자상담소만 해도 개소 이후 현재까지 매년 1천여 건의 상담을 해오는 등 이 문제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93년도 외국인 산재문제와 관련 법원에서 승리, 정부가 94년 1월부터 산재 보상을 인정하게 된 배경에는 교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전통적으로 노동의 신성함을 강조해온 교회는 복음정신에 입각해 그들이 이국인이지만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려 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상담 등 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많은 이들은 최근「외국인 고용법」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더군다나 유엔은 97년을「외국인 노동자의 해」로 정해 이들을 인권적 차원에서 보호해줄 것을 전 세계에 선포하고 있어 이들의 문제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현재 교회 내 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서 수 년간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실무자들은『산업기술 연수라는 미명 아래 시행되는 편법적인 외국인 노동자 도입의 무분별한 확대정책이나 열악한 근로 조건과 비인도적 처우를 방조하는 정책은 즉각 시정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교회 역시 이들에게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접근해 나가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교회는 당장 이들이 국내에서의 권리 확보에만 주목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귀국을 앞두고 있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귀국 후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이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즉 귀국 후 대부분 소비 성향이 강한 사업에 투자하는 이들이 많다는 지적에 따라 가톨릭교회는 적어도 이들이 자국에서 좀 더 건강한 경제활동을 통해 인간으로서 거듭 태어나도록 하는 데까지도 사목적 배려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문제는 첫째, 불법 체류를 조장하는 정부의 정책에서 기인한다. 후진국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실시된「산업연수생제도」가 기술 전수는 명목이고 3D 업종의 노동력 수급에 머물고 있어,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고 있다. 왜냐하면 산업연수생보다 불법 체류자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은 불법 체류자를 제도적으로 양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에 대한 아무런 대책도 없으면서 국제사회 안에서 이미지만 추락하고 있는 우리의 외국인 노동자 정책에 대해 관계자들은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오히려 합법화시켜 홍콩처럼 최저임금을 엄격히 적용하고 관리한다면 지금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면서『교회 역시 외국인 노동문제의 가장 핵심인 타당성 있는 법제도 확립을 위해 연대해 나가야 될 것』이라고 촉구했다.
앞서 살펴 보았듯이 홍콩의 경우 합법적 계약 노동자 제도로 국가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공급과 임금을 관리한다면 현재 외국인 노동자문제는 상당수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수원 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서 일하고 있는 최영(사베리오)씨는『외국인 노동자 보호법 제정을 위해 교회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될 것』이라고 촉구하고『음성적으로 수급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양성화시키는 길만이 이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또한 이들 문제의 배경에는 한국에 취업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종교 문화에 대한 몰이해도 한 몫하고 있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힌두교인들에게 강제로 권하거나, 이를 통해 인격까지 무시하는 행위와 같이 정신적인 폭행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근무하고 있는 사업장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들을 하느님의 창조물로 보고 이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한층 더 필요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문제의 가장 핵심은 우리나라 노동계의 비민주화에 기인한다는 게 가톨릭외국인노동자상담소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현재 명동성당에서 펼쳐지고 있는 노동법 개악 반대투쟁과 같이 비민주적, 고용자 위주의 한국의 노동정책이 외국인에게까지도 적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가령, 5인 이하 영세 사업장에 노동법 적용을 하지 않고 있는 한국의 노동정책은 대부분의 영세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없게 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조차 보호 못하는 노동법이 어떻게 외국인까지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게 바로 외국인 노동자문제의 시작이라는 얘기다.
서울대교구 외국인노동자상담소 실무대표인 백월현(리디아)씨는『세계는 지금 경영 자본은 국경이 없어졌으나 노동 자본의 벽은 더욱 높아졌다』고 진단하고『세계화를 외치는 요즘, 그들이 외국인이라고 해서 차별을 하거나, 학대해서는 결국 국제 사회에서 한국 전체의 이미지 추락으로 우리 경제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너희 땅에 함께 사는 외국인을 괴롭히지 마라. 너에게 몸 붙여 사는 외국인을 네 나라 사람처럼 대접하고 네 몸처럼 아껴라. 너희도 이집트 나라에 몸 붙이고 살지 않았느냐』(레위 19, 33~34)라는 성서의 말씀처럼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을 우리 이웃으로 대해야 된다.
유엔이「외국인 노동자의 해」로 선포한 1997년을 외국인 노동자문제 해결의 원년으로 삼아보자.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인격적인 대접이 바로 그들을 위하는 것뿐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 외국인노동자상담소 백월현씨 -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됨을 인정한다면 불법 체류로 인한 비인간적인 대우 더이상 방치 말아야”
상담 50% 임금 체불문제 쉼터 마련 등 사업 폭 확대 “국내 노조의 외국인 끌어안기 역부족”
한국 교회에서는 최초로 지난 92년 8월에 문을 연 서울대교구 외국인노동자상담소 백월현(리디아)씨는『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들을 합법화시켜 더이상 불법 체류 등의 비인간적 생활을 하게 해선 안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외국인 노동자문제가 사회문제로 불거진 것은 노동부 등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역설했다.
92년 문을 연 후 매년 1천여 건의 상담을 해오고 있는 그는『그러나 무엇보다도 노동법 등 제도 자체에 대한 민주화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우리 사회의 노동 구조가 민주화되어 있었다면 외국인문제는 훨씬 쉽게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월현씨가 일하고 있는 상담소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산재, 출국 송금문제 등을 해결해주고 이들의 한국 생활을 도와주고 있다.
외국인 문제 중 50%가 임금 체불문제로 이 상담소를 찾는데 심할 경우에는 1년을 일하고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는『일을 시켰으면 당연히 임금을 지불해야 되는 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경영관일 텐데 외국인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개탄하면서『사업주들이 이들에 대한 약속을 지켜주면 이들도 그만큼 성실히 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회가 복음적 견지에서 외국인들을 끌어안기 위해 설립한 외국인노동자상담소는 찾아오는 이들에게 구체적인 법적 대응은 물론 지난 12월 19일에는 이들이 쉼을 통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쉼터「베다니아의 집」을 마련하는 등 사업 범위가 점차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국내의 노조들이 같은 노동자인 외국인들에게 신경을 써주는 것이 당연할지 모르나 자신들의 입지마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그들마저 신경 써 줄 여력이 없다는 게 백씨의 견해다. 따라서 외국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문제는 물론 국내 노동계의 민주화부터 이루어야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백월현씨는『대부분의 업무가 불법 체류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기에 힘들 때가 많다』며『솔직히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 아니듯 이곳을 찾는 이들이 모두 선하지만은 않아 종종 괴로울 때가 있다』고 털어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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