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 오십시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소』하고 말씀하시자 어부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는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고, 야고버와 그의 동생 요한은 아버지와 삯꾼들을 배에 남겨둔 채 예수를 따라 나섰다(마르 1, 17∼20 참조).
콧노래를 부르며 집에 돌아오는데 어머님의 대문 앞 큰 마당(시골집은 집 뒤에 뒷마당, 대문 안으로 앞마당, 대문 밖으로 큰 마당 셋이 있었음)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손목을 꼭 잡고 마루로 데리고 가서 「여기 앉지!」하신 후『요셉이가 형 대신 신학교에 가야겠어!』라고 청천 하늘의 날벼락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1959년 1월의 마지막 날, 이때까지만 해도 신부가 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 날도 친구들과 어울려 마을 앞 저수지 아래 논에서 얼음을 깨고 미꾸라지를 잡아 가지고 오는 길이었습니다.
왜냐구요?…형님 두 분, 누님 두 분, 동생 둘의 사친회비, 월사금, 등록금 밑천으로 황소 두 마리, 암소 한 마리, 송아지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매년 봄이 오면 장에 내다 팔아서 장만하곤 하였습니다. 근수(kg)가 나가지 않아 미꾸라지를 삶아 먹으면 살이 쪄 몸무게가 많이 늘어난다고 해서…. 얼마나 잡았느냐구요? 친구 세 명이 한 물통(바케스)씩 나누어 가질 정도였으니 많이 잡은 셈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이 다음에 커서 무슨 일하겠느냐고 물으면「아버지께서 하시던 과수원과 과수원 옆에 있는 산(약 3만 평)을 개간해서 말 타고 다니면서 목장을 하겠다」는 대답은 신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변함이 없는 대답이었고 신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여러 해 동안 이 문제로 분심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셉이가 형 대신 신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는?
첫째…, 1957∼1959년까지 3년 동안 당시 신학교 사정으로 소신학교(중 1로 입학하는 제도) 입학제도가 중단되었기에 이미 형은 고등학생이 되었고,
둘째…, 이 다음에 간다고는 하나 혹시라도 그 사이에 마음이 변할지 모르니 형 대신 신학교에 가야 되겠다는 이유였고,
셋째…, 3년 동안 중단됐던 소신학생 입학제도가 요셉이 때에 부활된 것도 하느님의 뜻이요,
넷째…, 요셉이가 만일 신학교에 서 나오게 되면(당시에는 열 명 입학하면 신부될 때까지 남는 사람은 두세 명 정도) 형님을 대신 학교로 보내 겠다는 논리적인 말씀에 우물쭈물 하거나 뒷머리를 긁을 여유도 없이 꼼짝도 못하고「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서둘러 마친 후 어머님 손에 이끌려 성당 성모님 상 앞에서 묵주의 기도 5단을 바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님은『형 대신 신학교에 가는거야! 성모님께서도 보살펴 주실 테니 아무 걱정 말고…』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마르 10, 27)고 하신 말씀을 의심 없이 믿으신 어머님께서는 신학교 입학한 이후 신부가 될 때까지 15년 동안 뿐만 아니라 지금도 하느님 나라(1989년 선종) 성모님 곁에서 끊임없이 묵주의 기도를 바치고 계실 줄로 믿습니다.
아무 영문도 모르는 철부지 나이 열두 살에 소신학교 1학년에 입학(1960년 4월 2일)한 이후 나아가야 할 길은 멀고,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 앞에서『나를 따라 오시오.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오』(마르 1, 17)하신 주님 말씀과 늘 부모님의 기도하시던 모습과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주셨던 수녀님(큰 누님)과 가족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소신학교 입학한 이후 37년 동안 오늘에 이르기까지 도구로 써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입니다.
『신부님 아직은 때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다음에…. 자녀들이 사춘기 고비만 넘긴 다음에는…. 지금 벌려 놓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히면…. 신부님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자녀들의 큰 일 치루고 난 다음에는…. 남편사업이 잘 안 돼서….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집을 비울 수가 없어서…. 신부님! 이 나이에 제가 뭘 하겠습니까? 눈이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리고 기억력도 없어서…. 신부님! 많이 배우고 발 빠른 젊은 사람도 많은데 이 늙은이가 뭘 하겠습니까?』….
「나를 따르시오! 내 말 대로만 하시오!」
오늘도 우리를 당신의 도구로 쓰시고자 부르시는데, 쓰시겠다고 하시는데 우리의 응답은 매번 어떻습니까?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마태 19, 27) 그런데 돌아오는 게 무엇이었습니까? 비난과 조롱, 모함과 비웃음, 박해가 아니었습니까?
「좀 쉬겠습니다. 조용히 다니겠습니다」…. 하지는 않으셨습니까? 주님을 위해서 뭘 그렇게 대단하게 봉사하였기에? 몇 년이나? 얼만큼이나 하였습니까?….
곧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와 동료 삯꾼들을 배에 남겨둔 채 아무런 조건없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제자들의 모습과 우리, 나의 모습을 비추어 볼 때 왜 그렇게 말도 많고, 이유도 많습니까?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때가 많습니다.
『나를 따르려고 집 형제자매 부모 자식 토지를 버린 사람은 백 배의 상을 받을 것이다』(마태 19, 29) 하신 주님!
이 세상에 백 배 남는 장사와 사업이 어디 있습니까?….
본전도 안 된다고 하면서…. 잘 해야 본전이라고 하면서…. 남는 것도 없다고 하면서 입술이 터지도록, 한 웅큼씩 머리가 빠지도록 안간힘을 쓰면서도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는 왜 그렇게도 말이 많습니까?
『주님의 종이오니 주님의 뜻대로 하소서』(루가 1, 38) 하신 성모님의 신앙고백을 다시 한 번 본받고자 다짐하는 우리 신앙이었으면 합니다.
「나를 따르시오」하시는 주님께….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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