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첫 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출애 13, 2)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었고, 주님의 율법에 따라『산 비둘기 한 쌍이나 집 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레위 5, 7∼8).
신부님!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럴 수는 없는 겁니다. 정년 퇴직이 삼 년 밖에 안 남았는데 그래 삼 년을 못 참아 준단 말입니까? 32년 동안 결근이나 조퇴를 한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적어도 이삼십 분 전 출근하면 했지 제 성격상 늦은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새벽이면 으례히 창문을 열어 비가 오는지, 눈이 내리는지를 확인하고 특히 눈이 내리는 날은 한 시간 이상 서둘러 출근하던 직장인데 하루 아침에 내쫓다니 말이나 됩니까?
회사가 어렵다고 하거나 바쁘다고 하면 철야 근무는 물론 공휴일, 휴가까지 반납하며 일 밖에 회사 밖에 모르고 젊음을 바쳐 불태웠는데 너무 한거 아닙니까? 회사라는 생각보다는 내 사업, 내 일이라고 덤벼들었는데….
저의 건강은 어떤지 아십니까? 눈은 돋보기를 써야 신문이나 결재 서류를 볼 수 있고 귀도 들리지 않아 보청기를 껴야 되고 온 몸은 마치 종합병원처럼 성한 곳이란 한 곳도 없이 스스러졌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오로지 일, 일 하며 살아왔는데 말 한 마디 없이 명예 퇴직이라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까짓 퇴직금이면 답니까? 삼 년 더 다녀봐야 얼마나 받겠습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후배만 믿겠네! 은혜는 잊지 않을 테니 나 좀 살려 주게! 세상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나 나만은 믿어 주게…』할 때는 언제고, 자타가 부인할 수 없는 창업공신 삼인방인데 이제 와서는 말 한 마디 없이 퇴직이라니….
누가 돈 달라고 했습니까? 퇴직금은 벌써 닷새 전에 온라인으로 입금시켜 놓았지 않았겠습니까? 우연히 은행에 들렀다가 이 사실을 안 집사람은 그 자리에서 실신해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하고 있습니다.
「회사 내규는 이렇고, 회사 운영이 어려우니 후배가 먼저 십자가를 짊어지면 일반 사원들의 동요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후배를 어쩔 수 없이 명퇴 일번으로 올려놓을 수밖에 없었으니 이해해 주게」라고 한 마디만 했더라도 이렇게 마음이 아프지는 않을 겁니다.
신부님! 일주일의 반은 밤 늦게까지 회사에 남아 일했고 일거리를 집에까지 가지고 와서 한 날이 더 많을 겁니다. 천만다행히 집사람의 전공이 저와 같았기 때문에 저도 저지만 내조의 역할이 더 컸을 겁니다.
회사도 회사지만 선배를 돕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삼십이 년을 몸 부서지는 줄 모르고 동고동락하는 마음으로 저의 인생을 바쳤는데 뭐? 이제 와서는 명예 퇴직이라고? 말이 안 나옵니다.
가족, 집사람과 함께 지낸 시간보다는 회사 일에 미쳐, 선배에게 충성하며 지낸 시간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아무리 이혼이 흠이 아니라 하더라도 32년이나 살고 헤어지는 부부는 없을 겁니다. 아마 기네스북에는 올라 있는지는 몰라도….
신부님, 이제 명예 퇴직은 어쩔 수 없는 기정 사실인데 선배의 배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제가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한 때는 복수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누구 말처럼 제가 입을 열면 회사가 온전하지는 못할 겁니다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는 없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제 와 후회스런 생각입니다만 회사나 선배에게 내 모든 것을 희생하며 바쳤던 그 정성의 십분의 일만이라도 가족과 하느님께 바쳤다면 이렇게 저의 마음이 쓰라리지는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해야 분을 삼키고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겠습니까?
처음에는 배신 당했다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면서 이야기하던 숨 가쁜 소리가 조금은 가라앉는 듯한 이냐시오(○○회사 전 전무)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로 피눈물을 쏟고 있을까? 가슴이 쓰릴 뿐입니다.
누구나 인간은『말로 주고 되로 받는다』는 이해되지 않는 사고방식에서 얼마나 신음하고 있습니까?『언제나 꼭 갚아 주시되 일곱 배로 갚아 주신다』(집회 35, 10)는 하느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 행동이 안스럽기만 합니다.
가난한 사람은 어린 양 대신에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바치던 당시 율법에 따라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와, 있는 처지에서의 정성을 봉헌하셨습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신 하느님께 바치는 우리의 정성은 어떻습니까?
1.『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모태를 열고 나온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도 나의 것이니라』(출애 13, 2)
2.『땅에서 나는 곡식이든, 나무에 열리는 열매이든 십분의 일은 야훼의 것이다. 소든 양이든 모든 짐승의 십분의 일은 야훼께 거룩한 것으로 바쳐야 한다』(레위 27, 30).
3.『네 수입의 십분의 일을 기쁜 마음으로 바쳐라』(집회 35, 8).
4.『십분의 일 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한다』(마태 23, 23).
집으로 돌아가는 이냐시오 형제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오늘 하루도 일곱 배로 꼭 갚아 주시는 하느님께 무엇을, 얼마 만큼 봉헌하셨습니까? 십분의 일에 가까운 시간과 정성을 봉헌하셨습니까?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셨다구요? 무슨 일로, 누구를 위해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셨는지요….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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