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박해자들은 천주교 신자들을 가리켜 오랜 사회의 윤리 즉 나눔의 질서로 이루어진 신분 계층을 파괴하는 무리라고 생각하였다. 또 재산에 구분이 없는(통화) 사악한 유랑 집단으로 간주하였다. 실제로 교우들은 오랜 신분 질서에서 벗어나 복음의 가르침에 따른 평등생활을 추구하였고, 신앙 공동체요 비밀 교회인 교우촌에 모여 재물을 나누어 가졌다. 그러나 그것은 민초들이 오랜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이제 말하고자 하는 황일광(시몬)은 홍주의 백정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성장하였다. 그는 일반 상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살 수 없었고, 좀 번화한 읍내에 나갈 때면 사람들은 그를 쓰레기처럼 취급하였다. 이러한 조선의 신분질서 속에서 어렵게 생활하였지만, 그에게는 놀랄 만한 지능과 예민한 정신과 열렬한 마음이 있었으니, 그것은 하느님께서 그의 신분을 보상해주기 위해 내려주신 섭리의 은총이기도 했다.
내포지역에 복음이 널리 퍼지기 시작할 무렵, 마을에서 떨어져 살던 그도 우연히 천주교와 그 박해에 관해 듣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의 마음에는 호기심이 일기 시작하였는데, 오래지 아니하여 이를 충족시켜 줄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그는 내포의 사도라도 불리던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이었다. 그 무렵 이존창은 1795년 말에 두 번째로 체포되어 공주에서 형벌을 받고 천안에서 연금생활을 하던 중이었지만, 복음의 가르침을 들으려고 찾아온 시몬을 보고는 즉시 교리를 가르쳐 교회의 명단에 그 이름을 올려 주었으니, 그때가 1798년이었다.
그러나 고향의 분위기에서는 마음놓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이에 그는 좀 더 자유롭게 교리를 실천하려는 목적에서 아우와 함께 경상도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는 신분을 감추고 살면서 교우들과 비밀히 연락하며 생활하였다. 이로써 그의 형제는 가장 먼저 경상도로 이주한 충청도 교우로 교회사에 기록되었다.
사실 교우들은 그의 출신 신분을 알고 있었지만, 이로 인해 그들 형제를 천시하기는 고사하고 언제나 애덕으로 형제를 대해 주었다. 이제 그는 일찍이 얻었던 신분의 질곡 대신에 교우들과 교유하면서 얻게 된 평안을 현세에 있는 또 하나의 천당으로 생각하였다. 날이 갈수록 시몬의 열심은 더해만 갔고, 놀랄 만한 지능으로 깊은 교리 지식을 얻게 되었으며, 마음은 언제나 순교의 원의로 가득하게 되었다.
경상도 땅에서 산 지 2년 만에 시몬은 양근 땅의 유명한 교우 정약종(아우구스티노)에게로 가서 부쳐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만나 세례를 받게 되었다. 이때 그가 받은 세례명이「알렉시오」였다고도 한다.
그러던 중 1800년 5월 양근 지방에 박해가 일어나면서 그는 정약종의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였고, 이후에는 정동에서 땔나무를 해다 팔며 생활하였다. 그러나 서울로 이주한 지 몇 달 안 되어 1801년의 박해가 전국을 휩쓸게 되자 시몬도 이내 포졸들에게 체포되는 몸이 되고 말았다. 처음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그는『남원(즉 자신이 팔던 나무) 고을에서 살기 좋은 옥천(즉 감옥) 고을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기뻐했는데, 그에게는 감옥이 순교에 이르는 지름길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옥에 갇혀 있는 동안 그는 갖가지로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리들의 물음에 언제나 정성스럽게 대답하였고, 교리에 관련된 말이 나올 때면 출신 신분에 걸맞지 않는 고상한 말로 설명하여 형리들을 놀라게 하곤 하였다. 훗날 교우들 사이에 전해지던 말을 빌린다면, 형벌을 받는 동안에도 그의 덕행은 언제나 빛날을 뿐만 아니라 경이로운 증거로 은총을 갚고자 하였다고 한다.「만 번 다리가 부서지더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을 천민의 말이라 비웃던 외교인들은 결국「이방인의 어리석음」을 드러낼 뿐이었다. 하느님의 말씀을 비웃는 것처럼.
12월 26일(1802년 1월 29일), 마침내 시몬에게 고향으로 이송하여 처형하라는 판결이 내려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그는 즉시 형리들에 의해 옥에서 끌어내져 고향 홍주로 압송되었으며, 28일경 순교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니, 당시 그의 나이 45세였다.
차기진
<한국교회사硏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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