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자가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소화 성녀 데레사가 생전에 남긴 이 말은 봉헌생활이 교회 안에서 갖는 중요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역시 사도적 권고「봉헌생활」을 통해『교회는 결코 봉헌생활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신부」인 교회의 가장 깊은 내면적 본질을 웅변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표명하고 있다.
「교회의 심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수도회와 수도자들.「심장」이라는 말은 교회를 신비로운 몸으로 비유할 때 수도자는 숨어서 몸 안의 모든 지체를 원활하게 살아 움직이도록 봉사하는 부분이라는 말이다. 수도자들이 몸 담고 있는 수도회는 교회 안에서 어떤 위치를 갖고 있으며 그 생성 역사와 활동은 무엇인가. 봉헌생활의 날 제정을 기해 그 내용을 알아본다.
▲수도회의 생성
지금과 같은 모습의 수도회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기원 후 3백 년 전후로 알려지고 있다. 도시를 떠나 광야에 은거하며 특수한 생활 양식을 개척하였다. 이 같은 운동들은 근동 지방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났으며 특히 이집트의 은수자들은 다른 지방의 금욕생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 파코미오 아타나시오 성인 등을 통해 공주수도자(共住修道者) 반은수자(半隱修者) 형식의 수도생활은 서방으로도 번져 나갔다.
서방에서는 은수자보다 수도원이 많은 것이 특징으로 자리 잡혀졌다. 8백 년경 이후 베네딕도 규칙이 서양의 수도생활을 지배하게 됐고 많은 수의 수도원이 생겨났다. 중세에는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경제적 정치적 세력도 갖추게 되었다.
13세기 초의 도미니코 성인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등장은 외딴 곳보다는 도시 가운데 살면서 가난과 설교를 강조하고 노동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새로운 수도생활의 형태를 낳게 했다.
1534년 설립한 예수회는 속세에 파고 들어가 가장 위급하고 교회가 맡아야 할 일들을 처리하는 파격적인 수도회를 생성케 했다. 이후부터 많은 수도회들은 예수회 영향을 받아 교회를 위한 봉사에 수도회의 목적을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교육 포교 간호 등 전문 분야를 가진 수도회들도 속속 생겨났다.
넓은 의미로 볼 때 수도회는 이미 예수와 사도들 때부터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재산을 포기하고 독신을 지키며 교회 봉사를 위해 개인의 욕망을 버린 사람들은 초기 교회에서도 자주 목격됐으며 남자의 경우는 동정녀라고 불렸다.
현대에는 수도자라는 명칭을 거부하고 사회인으로서 복음적 권고를 지키는 신자들도 생겨났는데 바로 재속 회원으로 혹은 재속 수도회로 지칭되는 이들이다.
한국의 경우 수도회 활동은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진출, 고아원 시약소 운영 등으로 구제사업을 폄으로써 시작됐다. 그 뒤를 이어 베네딕도 수도회가 진출했고 계속해서 메리놀 포교 성 베네딕도 수도회,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한국 교회에 발을 디뎠다. 수도회 활동 44년 만인 1932년 한국인 최초의 수도회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탄생됐다.
94년 말 현재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발행된 한국 가톨릭 교세 통계에 의하면 여자 수도회가 70개, 남자 수도회가 30개, 재속회 및 사도생활단이 13개이다. 이들은 본당 병원 학교 사회복지시설 노동사목 및 특수사목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펴고 있다.
▲관상수도회
영적생활의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관상을 목적으로 고독과 침묵 속에서 부단히 기도하고 하느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수도회를 말한다. 시토회 가르멜회 글라라회 카르투지오회 등이 이에 속한다. 사도직 활동을 겸비하는 활동 수도회와는 구별된다.
관상수도회는 사도직 활동의 필요성이 요청된다 할지라도 그러한 활동을 배제하고 관상생활에 전념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관상수도회를 「천상 은총이 솟아나는 샘」이라고 표현했고 관상수도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교회의 영예」라고 찬양한 바 있다.
관상수도회 수도자들은 이 세상을 끊어 버리고 은둔생활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 세상 안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여기면서 기도생활을 나눈다.
이런 이유로 관상수도회는 세상의 도피처가 아니라 고요 속에서 더욱 깊이 세상 안에 침투, 세상을 지탱해 주고 떠받쳐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회 내적 생명력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한국에는 가르멜회 글라라회 트라피스트회 등 3개 수도회가 진출해 있다. 이 중 가르멜회가 1939년 서울에 처음 수도회 둥지를 틀었다. 남자 수도회 경우도 가르멜회가 1974년 처음 진출했고 트라피스트회가 87년 그 뒤를 이었다.
▲활동수도회
관상수도회가 기도와 하느님에 대한 찬미로 수도생활을 영위하는 데 비해 활동수도회는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 사목활동 의료사업 사회사업 교육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수도회 역사는 원래 관상수도회로부터 출발했다고 할 수 있으나 시대적 요청에 따라 직접 활동에 참여하는 수도회들이 등장하게 됐다. 수도회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한국 교회는 선교 지역이라는 특수성으로 수도회 진출 초기부터 선교와 활동적인 차원이 더 부각되었고 그런 면에서 관상수도회보다 활동 사도직 수도회로서의 활동적인 면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도원의 24시/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 - 철저히 『나』를 묻어버린 삶
『여러분의 소명은 모든 사람들, 특히 가장 멸시 받는 사람들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미래에 희망을 지닌 존재, 그 미래로 부름 받는 존재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언제나 모든 인간을 존중하는 가장 겸손한 증인으로 남아 주십시오. 가장 소박한 행위만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역사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제1회「봉헌생활의 날」을 맞아 세상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가난한 자가 된「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수녀들의 하루 생활을 따라가 보았다.
▲5시 30분 하루가 시작
새벽 5시 30분, 아직 어둠이 채 가지시 않은 시간이지만 수녀원의 하루는 이미 시작된다.
서울 은평구 신사동 한 주택가 가정집을 임시 수도원으로 사용하고 있는「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의 8명의 수녀들도 이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새 아침을 맞는다.
이들 중 집안일을 맡고 있는 막달레나 동순 자매(수녀)는 더욱 분주하다. 자매들과 인근 역촌동성당에 가 미사에 참례하고, 30분 묵상시간을 갖고, 공동으로 성무일도를 바치고 나면 식사 준비에 바쁘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요즘엔 공장에 나가는 자매들이 안쓰러워 아침 식사를 든든히 챙겨 먹이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관상·노동수도회
1955년 대구대교구 최덕홍 주교의 초청으로 한국에 진출한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수도회이다. 그러나「청색 작업복을 입고 다니는 수녀들」이라고 하면 왠만한 신자들은 다 알 것이다.
관상수도회면서 동시에 노동수도회인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를 교회에서는「세속에 사는 관상자」라고 부른다.
예수의 작은 자매들의 우애회의 영성은「성체를 중심으로 한 기도의 삶」「아기 예수를 닮은 영성적 어린이 정신」「노동자 예수를 본 받아 복음적 가난을 살아가는 소박한 삶의 정신」「교회와 교황에 대한 효성스런 정신과 형제적이고 보편적인 사랑」등으로 표현된다.
▲가장 가난한 삶 지향
이들은 예수의 작은 형제회 창설자인 샤를르 드 푸코의 정신에 따라 베들레헴과 나자렛에서 생활한 예수님의 겸손하고 숨겨진 가난한 삶을 살아간다.
도시에서 이들은 공장 직공, 청소부, 파출부 등으로 농촌에서는 김 매기, 모 심기, 품 팔이 생활을 하며 영세민 거주지에 수도원을 짓고 그들 가운데서 생활하고 있다.
▲파출부 공장 직공 생활
『왜 자청해서 이렇게 사느냐』는 우문에 자매들은『가장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계층 가운데 하나가 되기 위해서』라는 회헌을 들려준다.
덧붙여 자매들은『우리는 결코 그들을 지도하거나 교육하거나 가르치기 위해 그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우리 자신을 두지 않고 우리의 친구나 형제, 즉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돕듯이 그들을 사랑하고 돕기 위해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년째 노동자 생활
한국에 온지 20년이 됐다는 한 프랑스인 자매는 지금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파출부 일을 한다.
나이가 들어 일주일에 2∼3번 일을 나간다는 이 자매는 『현장에서 고생을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그 곳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하느님이 큰 일을 하고 계신다는 체험을 많이 한다』며『어떠한 조건의 인간과도 같아질 수 있다는 신비로움이 자매들의 수도생활을 일깨워 주는 큰 힘』이라고 소개했다.
창설자 마들렌 자매의 가르침 대로『아무에게도 중요시되지 않는 아무 것도 아닌 자매가 되고 간혹 어떤 사람들이 보고 웃어버릴 수밖에 없는 그런 자매가 되는 것이 우리 삶의 목표』라는 막달레나 동순 자매는『가끔씩 자신도 모르게 아는 척 하거나 리더가 되려고 할 때 많은 반성을 하게 된다며 이상적인 것과 현실적인 삶의 부딪침이 수도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털어 놓았다.
▲동네 주민 중매 자청
오후 6시가 조금 지나자 일 나갔던 자매들이 하나씩 돌아왔다. 바지와 두툼한 털 스웨트나 파커 차림의 이들은 머리에 쓴 파란 두건이 아니었다면 수녀인지도 몰라볼 만큼 평범했다. 그래서인지 동네 사람들이 마음씨 좋은 자매들에 반해『중매를 서 주겠다』고 수녀원에 찾아오기도 한단다.
이들은 개인 것이 없다. 또한 높낮이도 없다. 한 방에서 기도, 식사, 회합, 잠자리를 모두 해결할 뿐 아니라 장상이라고 해서 독방을 쓰거나 윗자리에 앉는 법이 없다. 종신 서원자와 수련자가 함께 어울려 잠을 자고 생활하는 곳은 아마 이 수도원뿐일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 정신이 어느 수도회보다 강하다. 개인의 이름이나 신상조차도 밝히지 않던 자매들이 공동체가 원하면 기꺼이 사진 촬영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뭉쳐져 있다.
「반죽 속의 누룩」처럼 개인은 죽고 공동체만 살아 있는 모습이 이 곳 수녀들의 생활을 웅변적으로 보여 주었다.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자매들은 총 24명으로 서울과 조치원, 목포, 대구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