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는 먼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외딴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고 계셨다. 그때 시몬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다니다가 만나서「모두들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이 근방 다음 동네에로 가자. 거기에서도 전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하고 말씀하셨다」 (마르 1, 35~38).
『신부님! 이 본당은 지내시기에 어떠십니까? 할 만 하십니까?』새 본당으로 부임한 후 전에 있었던 본당에서 인사차 찾아오는 교우들의 한결같은 인사에 무슨 말로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고민 아닌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참 그때가 좋았었습니다. 정말 신부생활 보람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목생활을 할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뿌듯합니다.
『주님께서 다섯 분과 함께…』
첫 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한(1975년 4월 15일) 다음날 새벽미사를 봉헌하기 위하여 고백소에서 나와 옷장에 걸려있는 제의를 하나하나 순서대로 꺼내 입고 제단에 나갔을 때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사에 나오신 분은 할머니 두 분과 할아버지 회장님과 어린이 한 명, 그리고 할아버지 회장님댁 강아지 한 마리…
순간 도시 본당에서 새벽미사를 봉헌하던 때 수녀님을 비롯해서 오십여 교우들과 미사를 봉헌하던 내가 지금은「주님께서 다섯 분과 함께」하고 있지를 않는가?「사제생활이 이런 것이로구나」하면서 첫 본당 주임신부로서의 사목생활을 시작하며 순수한 마음과 열정으로 부지런히 바쁘게 살았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공소 순회미사와 예비자 교리(1975년 당시 수녀님이나 전교사가 있는 농촌 본당은 거의 없었음)를 하고, 농촌 본당이기에 매일 새벽미사를「다섯 분과 함께! 열 분과 함께! 삼십 분과 함께!…」봉헌한 후 아침식사는 늘 사제관에서 하지 않고, 예비자나 냉담교우를 찾아가 본의 아니게「사발 농사」를 지으며 친분을 맺는 일부터 시작했었습니다.
농촌 본당의 열악한 살림을 보태기 위하여 오전에는 성당 마당 한 구석에 (농촌 본당이기에 마당은 컸었음: 약 삼천 평) 느타리 버섯을 키우고, 오후에는 점심을 얻어먹을 겸 교우들의 논과 밭을 찾아다니며 서투른 솜씨로 모내기, 피사리, 벼 베기, 고추밭, 배추밭 솎아주기와 풀 뽑기를 비롯하여 담배 잎, 뽕잎 따기를 하며 교우들과 하루 해를 보내고 저녁이면 또 공소에 나가 자정이 넘어서 개구리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성당으로 돌아오는 첫 본당신부의 사목생활은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누가 시켰다면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늘 피곤하고 졸립고 정신없이 바쁜 생활이지만 해가 지고 날이 저물었을 때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 주시던 예수님을 본받고자, 동분서주 하시던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하여 찾아다니는 사목생활이 바쁘고 피곤한 가운데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낙으로 삼았었습니다.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가며 입술은 부르트고 첫 본당 주임신부 일년 6개월을 마치고 다른 소임지로 떠날 때 몸무게는 8kg 이상 줄었고, 순수한 마음이기도 했지만 본당을 떠나던 날은 눈물이 앞을 가려 퉁퉁 부은 눈으로 새 부임지에 도착하여「울보 신부」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열정을 다 바쳤는데, 있는 정성을 다하였는데…. 그러나 하느님께서는『이 근방 다음 동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마르 1, 38)하시며 정 붙이고 일 할 만한 때에 새 부임지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신부님! 이 본당은 지내시기에 어떠십니까?』이 말 속에는 전에 있던 본당보다 생활하기에 낫다고… 아니면 여러 면으로 불편하다고? 어떤 대답이 나오기를 바라는 말인지 늘 조심스럽게 대답을 흐리곤 하였습니다.
새로 부임한 본당생활이 더 낫다고 하면 서운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벌써 다 잊으셨습니까? 성심성의껏 도와 드렸는데…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지난날의 모든 기억은 가슴에 오래 남는 일이기에 좋았던 일은 두 배로, 덜 좋았던 일은 반으로, 삼분의 일 만큼도 못 느끼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열이 내리고, 병자와 마귀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그런 분위기에 취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밤새 찾아 다녔습니다. 무르익은 이곳에서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예수님은『다음 동네에로 가자』하시며 당신은 갈릴래아와 모든 지방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할 사명이 최우선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복음 선포! 예수님의 말구유 탄생으로부터 골고타의 수난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이 복음 선포였음을 늘 마음에 새기며 때로는 나를, 우리를 환영하고 최대한 협력하는 사람과 그런 여건에서 오래 머물기를 원하는 인간 본성을 극복하여 그분께서 원하는 곳, 원하시는 일이라면 서슴치 말고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디를 가든, 어떤 사람을 만나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복음의 선포자」임을 인식하도록 원하시고 계십니다.
인간이기에 지난날의 추억이 아름답고 그 추억 속에 오래 머물렀으면 합니다만 주님께서는『쟁기를 잡고 자꾸 뒤를 돌아다보지 말고』(루까 9, 62 참조) 당신이 부르시는 곳, 원하시는 곳으로 미련없이 떠날 것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너희는 예루삼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서나 나의 증인이 되라』(사도 1, 8)고.
우리를 다음 동네로 보내시고 계십니다.「뒤돌아보지 말라」고 어서 떠나라고 하시면서….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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