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산성리의 남한산성. 이곳은 천주교회사에서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순교자들이 호교의 노래를 부르며 칼날 아래 목숨을 바친 곳으로 유명하다. 박해시대 이곳이 치명 터가 된 이유는, 1626년에 산성리가 형성되었고, 1795년부터 광주 유수가 성 안에 거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 성벽에 가장 먼저 순교의 피를 묻힌 사람은 바로 한덕운(토마스)이었다.
그의 성이「우」라고 나오는 기록도 있다. 충청도 홍주 출신인 그는 1790년 10월에 윤지충(바오로)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나, 이듬해 신해박해로 윤지충이 전주에서 순교한 뒤부터는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다가 1800년 10월에는 고향을 떠나 경기도 광주 땅에 속한 의일리(지금의 의왕시)로 이주해 살았다.
이곳에서 그는 성실하게 생활하면서 기도와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으며, 오로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데만 열중하였다. 교우들에게 교리를 설명할 때도 마음에 간직한 것을 그대로 표현했으므로 굳건한 순교신심이 배어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다음해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토마스는 교회와 교우들의 소식이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으므로 사기 행상인으로 변장을 한 뒤 서울에 올라가 보기로 작정하였다.
도중에 청파동에 이르렀을 때, 그는 거적으로 덮혀있는 홍낙민(바오로)의 시신을 보자 서슴없이 시신을 옮겨 정성스럽게 장례를 치러주고는 그의 아들 홍재영(쁘로따시오)의 배교를 엄하게 질책하였다.
홍재영은 그 뒤 회두하여 기해박해 때 순교하였으니, 그의 질책이 순교에 이르는 길에 힘을 실어주었음에 틀림없다. 토마스는 또 서소문 밖에서 최필제(베드로)의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러주기도 하였다.
사실 그 상황에서 교우들의 시신을 돌본다는 것은 자신이 교우임을 드러내는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토마스는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포도청에서 엄한 형벌과 문초를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배교할 수 없다는 말로 문초에 대신하고는 12월 26일(양력 1802년 1월 29일) 동료들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이튿날 광주 남한산성으로 옮겨져 참수되었으니, 이때 그의 나이 50세였다.
그 무렵 청주에서도 한 열심한 교우가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 순교자의 이름은 김사집(프란치스코)으로, 관찰 기록에는 그 사실이 나타나지 않지만 교우들의 입을 통해 그의 거룩한 행적이 알려지게 되었다.
충청도 덕산의 양가 집안 출신인 프란치스코는 본래 과거에 뜻이 있어 어려서부터 열심히 글을 배웠다. 그러나 성교의 진리를 들은 뒤부터는 이를 버리고 오로지 천상의 가르침을 배우는 데만 열중하여 기도와 독서로 낙을 삼았다. 더욱이 타고난 슬기와 총명함으로 인해 그의 모범적인 생활이 주변에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교리를 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약한 자들을 먼저 격려해 주었고, 말로 가르치기에 앞서 스스로 진리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특히 애덕 행위와 나눔의 생활은 많은 이들에게 즐거움과 평안을 가져다 주었다.
한편 프란치스코는 일찍이 배운 학식을 바탕으로 교회 서적을 필사하여 가난한 교우들에게 나누어주곤 하였다. 그러므로 1801년 박해가 일어났을 때 관청에 압수된 많은 서적들이 그의 것으로 판명나게 되었고, 그는 이내 배교자들의 밀고로 체포되어 덕산 관아로 압송되었다. 이후 그는 여러 차례 가혹한 행위를 받았지만, 결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교우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는 옥중에서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내『언제나 천주와 성모님의 도우심에 의지하여 교우답게 살아가도록 권하였다』고 한다.
몇 달 뒤 그는 해미 진영을 거쳐 청주로 압송되었다. 그러는 동안 형벌로 인해 그의 몸은 가눌 수 조차 없을 정도가 되었고, 청주 옥에 도착하였을 때는 상처에서 흐른 피가 말라붙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더없는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열절한 신·망·애 삼덕으로 순교의 마음을 굳혀갔다.그리고 1801년 12월 22일(양력 1802년 1월 25일) 사형 판결을 받고 장터를 한 바퀴 돈 뒤에 다시 곤장 81대를 맞고는 조용히 숨을 거두니, 그의 나이 5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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