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시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때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고,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보다 더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나서 예수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모셨으면 합니다」(마르 9, 2∼5)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바로 그때에 구름이 일며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마르 9, 7)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일 TV 뉴스 전반부의 5분 이상, 신문들의 1면에서 6∼7면 전체가 한보사태(?)에 관한 내용으로 뒤범벅이 되다시피 한 가운데서도 매년 행사처럼 보도되던 설 연휴에 관한 보도 내용은 한여름의 소낙비 삼형제처럼 이따금씩 소개될 뿐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2천만 명 이상이 귀성전쟁(?)을 치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가긴 가야 할 텐데…」하면서 예상되는 교통 체증에 걱정을 하지만 마음만으로 급한 귀향길을 달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나 다르까? 그러면 그렇지!…, 보름 전부터 고속도로 진출입 안내, 버스 전용차선 위반 차량 헬기로 감시, 갓길 운행 적발에는 30일 면허 정지, 국도와 간선도로 이용 안내, 대중교통 이용 권유와 홍보, 6인승 이상의 승합차 렌트 이용 방법, 고향을 찾아 떠나는 민족 대이동에 관한 방송으로 설 연휴의 흥분이 지난해보다는 못했지만 전문학원의 수능시험, 논술시험 준비 못지 않았었습니다.
한국도로공사 측은「설 연휴 기간 중 1백만 대 이상의 차량이 고속도로를 이용할 것으로 보여 극심한 혼잡이 예상된다」며 이천, 평택, 천안으로 이어지는 1, 3, 42, 45번 국도 이용을 적극 권유했지만 어디를 가나 주차장을 방불케 하였습니다.
연휴 기간 중 40만 명의 설 귀향 여행객을 수송할 서울역은 전 노선의 좌석은 물론 입석표 완전 매진!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에도 전 구간 버스표 완전 매진! 한보가 어떻고, 정치가 불안하고, 누구누구가 소환되고 얼마얼마를 받아 먹었고…, 할지라도 설 귀향이 무엇이길래 저 야단들일까? TV 화면을 지켜보는 태생이 서울인 사람들도 의아해 할 정도로 설 귀향은 많은 이들의 관심과 걱정 아닌 걱정의 화제 거리였습니다.
『도대체 대통령은 국수만 먹고 뭐 한데! 문민정부 좋아하시네! 문민정부가 밥 먹여 준데? 맨날 지지고 볶고 싸우기만 하지 여의도 1번지 사람들은 뭐한데! 20년 전이나 군사독재나 문민정부나 이거 하나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군사정권 때가 훨씬 나았지! 경제는 살렸었지…』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평소보다 두 배, 세 배 걸리는 설 귀향 차 안에서의 말 잔치는 안주도 되고 술이 되어 풍성했었습니다.『내집 놔 두고 길바닥에서 이 무슨 고생이람! 차 안에서 잘 수도 없고, 가자니 길이 막혀 갈 수도 없고…, 집으로 돌아가자니 그럴 수는 없고 단순히 평소보다 두 배, 세 배 이상의 시간 그 자체가 아니라 차 안에서의 짜증과 스트레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만 그래도 마음은 고향으로…』고향이 무엇이기에 귀향전쟁(?)이란 말까지 생겨났겠습니까? 조상님의 산소, 부모님과 형제자매, 계산도 따질 줄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있지 않는가?『고향을 잃은 사람은 보금자리를 잃은 새와도 같다』(잠언 27, 8)는 말씀처럼 고향은 누구에게나 안식처요 돌아가고 싶은 그곳이 아니겠습니까? 그 많은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도 길이 막혀 짜증난다고, 두 배 세 배 시간이 걸린다고, 피곤하고 운전하기 힘들어 가야 할 길을 포기하거나 중도에 되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없습니다.
그저 고향에 가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상님과 부모님, 학교 은사님과 도움을 주셨던 분들에게 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고 성심성의껏 마련한 정성을 드릴 수 있다는 인간의 정이 마음을 설레게 하고 때로는 흥분시키기도 할 것입니다.
『선생님! 저희가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선생님과 모세, 엘리야와 살았으며 합니다』(마르 9, 5)라고 베드로는 깊은 생각 없이 말씀드렸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다』(마르 8, 31)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그래서는 안 된다』(마르 8, 32)고 펄쩍 뛰었습니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는가?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섰는데….『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 33)하시며 꾸짖던 스승 예수님, 늘 인류 구원을 위해 수난과 죽음을 가르치시던 스승 예수님의 가르침을 까맣게 잊어버린 베드로는 그저 황홀한 분위기에서 머물기를 우리를 대신해서 말씀드리지 않았겠습니까? 내가 베드로였다면 초막집을 짓기보다는 수난의 길, 죽음의 길을 서둘러 가자고 말씀드릴 수 있었을까?
저 멀리 골고타 언덕의 죽음만이 인류 구원의 희생 제물이요 영원한 부활에 이르는 길임을 베드로는 감히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우리도 역시….
그러나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아우성 같은 그 모습을 보면서 천상 하느님께로 한 걸음 또 한 걸음 나아가는 우리 자신을 찾고 싶습니다. 가는 길은 힘이 들고 멀다고…, 졸립고 피곤하고 짜증난다고 가던 길을 멈추거나 되돌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 7)고 명하시는 하느님의 말씀과『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마르 8, 34)는 예수님의 길, 수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을 또 다짐해 봅니다. 제발「어휴」한숨만 짓지 말고….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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