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년 1월 10일(음력), 천주교를 뿌리 뽑으려는 대왕대비 김씨(정순왕후)의 척사 윤음이 나오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신유박해는 12월 22일 토역반교문이 발표되면서 끝을 맺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주문모 신부를 비롯하여 서울, 경기, 충청, 전라도 등지에서 많은 지도자들을 잃게 되었고, 순교자들의 피로 복음의 역사를 메꾸어야만 하였다. 한편 조정에서 북경에 보낸 사신 일행은 황사영의「백서」를 꾸며서 만든「가백서」와 토사주문을 인종 황제에게 올린 다음, 이듬해에는 황제의 답서인 토사주복을 받아 귀국하였다.
이렇게 되어 공식적인 박해는 끝나게 되었지만, 신앙을 증거하고 옥에 갇혀 있던 신자들은 며칠 안에 사형 판결을 받고 순교자 명단에 그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이 마지막 순교자들 가운데서도 이미 유명해진 순교자 집안 출신으로 그 뒤를 따른 유중성(마태오)을 기억해야만 한다.
전라도의 사도라 불리는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조카로 전주에서 태어난 마태오는 1786년에 집안의 장남인 부친 유익검이 사망하면서 작은 아버지인 유항검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났다. 사람들은 마태오를 부를 때면「강주(진주) 도령님」이라고 불렀다. 그가 진주 유씨 집안의 장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항검의 집은 전주 초남이(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있었는데, 그의 활동으로 인해 온 집안 식구는 물론 많은 이웃들이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므로 마태오도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집안의 신앙을 이어받아 성실한 하느님의 종으로 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하다가 전라도 지역을 방문하자 집안 식구들과 함께 신부를 뵙고 성사를 받았다.
1797년, 초남이의 유씨 집안에서는 전통 사회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경사를 맞이하였다. 유항검의 장남이자 마태오의 사촌 형인 유중철(요한)과 서울의 유명한 교우 집안의 딸 이순이(누갈다)가 동정부부로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누갈다는 바로 초기 신자 중의 한 사람인 이윤하(마태오)의 딸이자 순교자 이경도(가롤로)의 누이 동생이었다. 그 결과 마태오는 누갈다의 사촌 시동생이 되었는데, 누갈다는 누구보다 신심이 뛰어난 마태오를 친동생처럼 생각하면서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었다.
이러한 유씨 집안이 모든 것을 잃게 된 것은 신유박해 때문이었다. 유항검과 아우 관검이 그해 봄에 체포되어 형벌을 받은 후 9월에 사형 판결을 받았고, 장남 중철과 차남 문석(요한)도 10월에 순교하였다. 이에 앞서 9월 중순에는 마태오와 누갈다를 비롯하여 나머지 가족들이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 투옥되었다. 그리고 10월 6일(양력 11월 11일)에는 의금부의 판결에 따라 각각 유배형을 당하게 되었는데, 이때 마태오는 함경도 회령으로 3천 리 유배형을 받았고, 누갈다는 평안도 벽동으로 보내져 노비가 되어야만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 유배형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미 순교할 마음이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유배소로 출발하자마자 그들을 보려고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진리를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전주 감사도 어쩔수없이 유항검과 관검의 처, 누갈다와 마태오 등 4명을 다시 감영으로 데려다 사형을 언도한 뒤, 전주 읍내에서 조금 떨어진 숲정이 형지에서 처형하도록 결정하였다.
1801년 12월28일(양력 1802년 1월31일), 형지로 가는 동안 마태오는 늘어서 있는 군중들에게 매우 열렬히 교리를 설명하였고, 누갈다는 시어머니를 격려하면서 함께 순교의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형지에 도착하여 4명이 함께 칼날 아래 목숨을 바쳤으니, 당시 마태오의 나이는 15∼18세 가량이었고, 누갈다의 나이는 20세였다. 이제 전주의 유명한 유씨 집안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들이 살던 집은 관청의 지시에 따라 파괴되었고, 그 자리에는 연못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것이 잊혀진 것은 아니었다.
박해 후 천주교회가 재건된 것처럼, 그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종이 되어 신앙 후손들의 가슴 속에서 다시 살아나게 되었으며, 초남이 인근의 재남리에 묻혀 있던 그 유해들은 1912년에 발굴되어 전주 중바위산(치명자산)으로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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