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찬성론자들이 원전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합리화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원전 합리화는 산업문명의 폐해
먼저 최근 한 정당이 실시한 여론 조사를 통해 울산시민들이 정부의 원전 증설 계획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보자. 울산은 인근 도시까지 합하면 총 9기의 원전에 둘러싸여 있어 원전 문제에 가장 예민한 지역으로 꼽힌다. 에너지정의행동(대표 이헌석)이 최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울산지역의 경우, 남쪽으로 고리 원전, 북쪽으로 월성 원전 사이에 위치해 있어 약 82만 명의 인구가 양쪽으로부터 직접적인 원전 피해 위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울산시민 554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원전 증설 계획의 찬반을 묻는 질문에 32.3%가 “찬성한다”고 답변한 반면 45.3%가 “반대한다”고 답했다. 최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치고는 반대 의견이 높지 않은 편이다.
찬반 비중도 중요하지만 정작 이번 여론 조사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따로 있다. 찬성 측에서 밝힌 ‘원전 증설 계획에 찬성하는 이유’ 부분이다. 이들은 찬성하는 이유로 “원전 말고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다”는 점을 꼽고 있다. 원전 문제에 가장 예민한 환경인 울산에서조차 원전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원전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새다.
사실 “원전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은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세계적으로 에너지 확보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대체에너지 개발 또한 요원한 상황에서, 화석연료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서는 원자력이 거의 유일한 대안처럼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전기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원전 증설이 가장 편리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정부도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24년까지 매년 3.1%씩 전력소비량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원전 13기를 추가로 건설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고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방향으로 결론 내리는 데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다.
문제는 어느새 현대인들이 편리함과 효율성, 더 많은 소비를 감당하기 위해 대량생산해야 하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가치의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는 데 있다. 산업문명의 발전에 따른 물질 소비와 소비지향적 생활 방식은 일반인들은 물론 정부, 나아가 신앙인들에게조차 인간중심주의적 사고와 판단에 머물게 한다.
더 큰 문제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산업문명에서 한 번 추진된 정책은 쉽게 번복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오직 편의와 효율성만을 생각하는 정책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 있어 설사 부작용이 예상되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가 생태계에 어떤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반환경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원전 또한 반생명적이고 반환경적인 측면이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결국 산업문명 부작용의 늪에 빠져있는 한 한국에서의 원전 문제는 “달리 대안이 없다”는 쪽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물질적 풍요를 우선시하는 소비지향적 생활방식은 생명을 살리고 창조질서를 보전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만을 추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일 강원도 삼척에서 열린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합동미사 및 범시민 촛불문화제 모습.
「환경에 대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지침서」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강조하고 있는 현대 산업문명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사람들은 가능한 대로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남들보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남들보다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는 것은 (산업문명에서) 그만큼 남들보다 더 행복한 것을 의미한다.”(11항)
“원전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가치관과 시각에도 지침서의 이 같은 지적이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 정부와 국민, 나아가 신앙인들의 의식 뿌리에는 물질의 풍요로움이 곧 행복이라는 삐뚤어진 행복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가치관으로는 원전은 더 많이 소비해야 하고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원전 13기 추가 건설 계획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겨울철 최대전력 수요가 세 번이나 경신되자 에너지 절약을 호소하면서도 정작 수급 안전성을 이유로 원전 추가 건설 계획을 고수하며 오히려 전기 과소비를 조장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전을 건설하는 것이 다른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거나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원전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선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는 「환경에 대한 주교회의 지침서」의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한 번쯤 반문해 봐야 한다. “경제 자체의 속성이 이윤을 추구하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무조건적이고 끝없는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 성장 정책은 자연을 파괴한다. 경제 활동은 필연적으로 자연 재화를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쓰기 때문에 무조건적이고 끝없는 이익 추구는 자원과 에너지를 지나치게 사용함으로써 자연을 약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14항)
또한 삶의 행동 양식이 하느님과 인간,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생태신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지, 나아가 생태신학적 가르침에 근거해서 살아가는 문명인 생태문명을 건설하는 데 맞는지도 성찰해야 한다.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 교수 이재돈 신부는 “산업문명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준 장점이 있지만, 반면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극에 달한 산업문명은 생태계를 심각하게 파괴시키는 부작용도 초래하고 있다”며 “현재 원자력이 싸고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하며 단순한 에너지원으로 생각하는 것은 산업문명의 물질적 풍요로움만을 강조하는 단편적인 시각이다. 원전 문제는 생태신학에서 강조하고 있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도 합당한 조화를 지향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하며, 나아가 현대인들의 삶의 양식을 생태문명의 관점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울진 원자력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