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버리며 그 상을 둘러 엎으셨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이것들을 거두어 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요한 2, 16)고 꾸짖으셨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의 머리에는「하느님이시여,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내 열정이 나를 불사르리이다」하신 성서의 말씀이 떠 올랐다(요한 2, 13-17)
신부님! 한 달에 한 번씩만 가정방문 나오시지요… 왜냐구요? 신부님과 수녀님이 가정을 방문하신다고 하니 며칠 전부터 온 집안을 대청소하고 안방, 응접실, 씽크대는 물론 옷장 안과 아이들의 책상 서랍과 신발장까지 정리정돈을 하니까 새 집에 이사 온 느낌입니다. 아마 일주일 전부터 준비했을 겁니다. 신부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매 주간 목요일에 가정 방문을 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요약하며 가정 방문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독자 여러분에게 맡겨 드립니다. 정성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면 옛 성현들의 말씀을 곰곰이 생각하며…. 물론 모든 가정이 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의 가정 방문….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곳에는 색 바랜 손주의 돌 사진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손주의 모습은 가능한한 벗은 모습이었고, 손녀의 모습은 가능한한 옷을 많이 입혔다는 차이였습니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부자리 머리맡으로 보이는 곳에는 으례 약봉지, 약병, 심지어는 파스가 왜 그렇게 많은지, 몇 년분 정도는 넉넉하리라 생각되었습니다.
성경책과 묵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눈이 잘 안 보여 성경책이 없고 묵주는 저기…. 가리키는 곳을 보면 성모님 상의 목과 두 손을 두세 번 감아놓은 먼지 쌓인 묵주를 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초등부 어린이들 둔 젊은 세대…. 거실 중앙으로부터 정직상, 건강상, 협동상, 저축상, 예절상, 친절상…, 상 같지도 않은 상장들이 마치 도배를 하여 놓은 듯한 곳에 유치원 졸업 사진, 졸업 메달과 트로피까지….
안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으례히 방보다 큰 침대(?)… 아이들이 워낙 극성 맞아서 성모님 상은 깨트렸고 성경은 어제까지 읽었는데 애들이 치웠나? 없는 성경을 찾느라고 베드로야! 마리아야! 성경책 어디에 두었어? 다그쳐 물으면『엄마 우리 집에도 성경책이 있었어요?』눈치 없는 베드로가 야속한 듯 어머니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새 아파트로 이사간 집의 가정 방문… 거실 중앙에는 대문짝(?) 만한 TV, 오디오 세트가 놓여 있고 거실과 안방 곳곳에는 동화에 나오는 그림 같은 집을 연상케 하듯 온 정성을 들여 이십 년이 지나도 싫증이 나지 않을 듯한 분위기….
십자가와 성모님 상은 어디 있습니까?…. 익스프레스로 이사했기에 아저씨들이 십자가를 포장해서 어디에다 모셨는지 아직 찾지 못하였고 성모님 상은 애들이 성모님을 좋아하기에 애들 방에 모셔 놓았다는 이야기에 마음 속으로『성모님 죄송합니다…』물론 새 아파트 입주자들의 극히 일부라고 애써 믿고 싶었습니다.
중년 가정의 가정 방문…. 사람도 넷, 방도 넷이기에 성수 축복을 하며 성가를 부르면 2절 가지고는 안 되고 3절까지 불러야 했습니다. 신발장 옆, 눈에 잘 보이는 곳에는 골프 가방과 골프화, 거실 중앙에는 고려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듯한(?) 도자기와 금박 씨리즈 책들, 눈에 확 들어 오는 곳엔 문짝 만한 가족사진….
십자가는 어디에 모셨습니까? 신혼생활이나 셋방살이 할 때 구입한 검으티티하고 손바닥 만한 십자가가 대형 가족사진 옆에 모셔져 있기는 하나 찾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오래된 것일수록 가보로 여기는 요즘 세상이지만『주님! 죄송합니다. 집 평수는 커지고 아이들도 다 컸는데 주님만은 점점 작아지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까?…』
몇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상가 전세 성당에서 성전 신축을 할 때였습니다.『성당이 크고 화려하면 이질감이 생기고 정이 안 드니 작고 검소하게 짓자』는 교우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아이들 자라나는 비례대로 집도 소·중·대로 변하는 세상, 교우들은 그림 같은 집에 살면서 오로지 주님만은 2천년 전 베들레헴 마굿간 같은 성전에 모실 수는 없습니다.『적어도 우리집 거실, 안방보다는 낫게 봉헌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집 거실의 응접세트 정도의 장궤틀(의자)은 마련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면서 교우들에게 호소하던 때의 일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을 정신없이 어지럽히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의 집, 성체를 모시는 주님의 집이요 궁전인 성전을 사랑하고 아끼는 열정이 우리의 신앙을 불사르고 있는지를, 아니면 하느님의 집보다는 그저 평수를 늘리고 몇 년마다 도배를 하고 집 수리를 하며 TV세트와 냉장고는 대형, 오디오 세트와 응접 셋트는 고급으로 바꾸는 일을 인생의 기쁨으로 삼고 있지나 않은지….
『하느님의 집을 아끼는 열정이 이 몸과 영혼까지 불사르게 하소서』『아멘』할 수 있는 신앙인이기를 기도하면서「비닐 하우스」성당에서『지극히 화려하고 영화로운 성전, 온갖 정성 다 들여 주님 집 이뤘네…』를 눈물로 노래 부르던 지난날을 회상해 봅니다.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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