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보다 더 로마적인 교회」라는 비판이 적어도 한 자락의 타당성을 가지는 한 신학의 토착화는 2천년대를 앞둔 한국 교회가 반드시 달성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평신도 신학자 황종렬씨가 펴낸「웅녀와 단군의 성서 읽기」는 한국 신학의 관점에서 성서를 읽어내려는 시도이다. 즉「그동안의 신학적 성찰을 통해 골라온 우리 한국인의 숨결로 하느님을 직접 호흡하고자 하는 갈망에서 시도한 한국 신학적 성서 읽기」라고 할 수 있다.
일견 성서 초보자들을 위한 안내서라는 착각을 해서는 읽어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이 책은「하느님 다스림 중심의 역사 해석」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하느님의 다스림」을 성서 읽기의 준거로 삼고 있다.
이러한 성서 읽기의 주요 개념 중 하나는 선형성(preformation)인 듯하다. 이는『모든 인간 개개인이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를 통해서 자기 나름대로 그분과의 관계에서 부여받고 해석해서 형성해 나온 그 생명의 질서』와 다름 아니다.
저자는 우리의 선형성의 모체, 성서 세계를 불러서 원탁에 둘러 앉는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다스림을 대조의 틀로 삼아 이들의 구체적인 삶의 정황 속에서 생명으로 다가오는 그 하느님을 함께 나누어간다.
저자는 우선 객관적인 성서 읽기로 주장되는「읽어내기」와 자기 삶의 자리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삶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들여읽기」를 검토한다. 들여읽기가 갖는 선입견, 주관적 해석의 위험성은 물론 배제하지 않지만「존재 자체가 선입된 것」이며『궁극적으로는 하느님에게서 와서 선입되는 것이 없으면 누구도 생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선입견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메시지는 독자와 본문 사이에서 생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생성의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지상의 배꼽」(에제키엘 38, 12: 공동 번역에는「세계의 중심지」로 번역)으로 인식했듯 우리 역시 자기가 딛고 선 땅, 자기의 중심을 세계의 배꼽으로 아는 중심 인식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서는 다른 모든 이들에게도 배꼽이 있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성서는 우리 모두에게 심겨진 생명의 질서를 대조의 틀로 삼아서 성서를 바라보는 이들의 생명과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생명을 관계시키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서를 우리의 선형성, 우리 민족의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읽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런 성서 읽기가 가능해질 때「하느님의 다스림」은 다른 어떤 민족의 역사와도 관계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우리 역사를 성서의 눈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해 성서 저자의 입을 빌어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단군신화의 가장 오랜 문헌인 삼국유사를 일연이 쓸 당시 몽고의 침입으로 민족과 땅이 초토화된 절망의 상태에 대해 검토함으로써 하느님의 다스림을「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몽고와 고려민 사이에서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살펴본다. 이는 곧 하느님과 이스라엘, 고레스를 비롯한 이방 민족들과의 사이에서 형성되었던 관계를 조망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가톨릭대학 신학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저자가 한국적 신학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이다.
『비주체적이고 서구지향적인 시각만으로는 21세기의 신학 연구에 적절하게 맞추어 갈 수 없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맞는 한국 그리스도교 영성과 신학을 위해서는 자기 역사 속에서의 선형성사를 철저하게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주로 몸 담아 활동하는 형성과학연구소의 후원에 힘입어 3월 5일 미국 피츠버그로 박사 학위를 준비하기 위해 떠나는 그는 이미「한국 신학 방법론」을 박사 학위 논문 주제로 설정해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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