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뱀이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높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높이 들려야 한다. 그것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3, 14~15)
『바오로 엄마! 글쎄 베드로 신학생이 신학교에서 아주 나왔데네』『며칠 전부터 베드로 어머니가 성당에서도 안 보이더니 그래서 그랬구만유. 요즘 우물가에도 안 나오고, 마실도 안 다니니 베드로 엄마 안됐네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나다니겠수! 우리가 한 번 찾아가야 되는거 아니유』. 무슨 일이래유? 베드로가 어릴 때부터 총명해 첫 영성체할 때 3백20문답을 눈 감고 줄줄 외어 칭찬도 많이 받았는데 신학교 공부가 힘들다고는 하지만 설마 공부 못한다고 쫓아낸 것 아닐 테지유.
그럼 왜 나왔을까? 어려서부터 개구쟁이었는데 아무리 엄하다 하더라도 장난이 좀 심하다고 내쫓을 일은 아니겠지유. 본당 신부님 얼굴 한 번 자세히 봐유! 어려서 되게 개구쟁이 노릇을 한 것 같지 않아유?
그럼 뭘까? 잠이 많아서 그랬을까? 신부 될려면 부지런해야 된다고 하던데. 설마 잠이 많다고 그랬겠우! 애들 때는 다 잠이 많은 거 아니유? 베드로네 할머니 얼마나 잠이 많아유! 그저 앉았다 하면 졸고 심지어는 미사 강론 시간에 졸다가 잠꼬대하는 바람에 본당 신부님한테 싫은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베드로가 할머니 닮아서 잠이 많은 거 아니겠어유? 그래도 그렇지 잠 많다고 내쫓을까유?
그럼 왜 나왔을까? 혹시라도 여자 문제일까유? 신학교에선 여자문제에 걸리면 제일 엄하다던데유. 마리아 엄마! 애들 키우는 어머니로서 그런 말 하지 마슈! 베드로가 뭘 알겠수?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이유. 아무리 엄하다 하더라도 그 나이에 뭘 안다구. (1960년 당시 필자가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방학 전 담임 신부님은 방학동안 주의사항을 강조하셨는데 그 중 첫째, 엄마도 누나도 여자니까 쳐다보지도 말고 말도 하지 말라고 엄하게 강조하셨습니다) .
윗방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마실 온 어머니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처럼 함께 걱정하고 위로해 주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고향 마을은 76세대, 공소 강당을 마을 제일 높은 언덕 위에 짓고 강당 주위와 아래로 옹기종기 모여사는 구 교우촌, 1백% 세대주 교우촌 마을이었습니다.(해방 이후 출신 사제는 본인을 포함 2명, 수도자는 누님 수녀님을 포함 13명, 신학교와 수녀원에 입회했다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신앙의 길을 달리한 수는 세 배가 넘어 한때는 성소마을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인생 고해라는 말이 있듯이 누구에게나 산다는 그 자체가… 오늘 하루도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나 나만의 고통, 때로는 죽음같은 본인만의 고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신학교 생활 만 12년, 신부생활 23년째 살아온 지난 길을 돌이켜 볼 때 본인만의 고통, 때로는 이 길을 가면서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던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힘든 이 길을 가야만 하는가? 꼭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구원 받을 수 있을가? 그만 둘 수는 없는가? 때로는 신학생으로서의 철학과 신학에 있어서의 회의론, 사제로서의 십자가 무게가 힘겨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십자가의 주님보다 먼저 고향의 부모님, 특히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르고 가족들의 모습이 눈 앞에 어른거렸습니다.
팔남매를 어떻게 키우셨는데? 딸을 수녀원에 입회시키고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신 후 아벨의 제물처럼 값지게 생각하시기보다는 늘 염려스러움의 기도를 바치시던 모습, 딸 수녀, 아들 신부 생각하셔서 그저 조심조심 살으시던 부모님, 수도자 성직자 집안이기에 그 누구처럼 큰소리 한 번 내지 못하시던 부모님과 가족들의 모습은 때로는 광야에서의 구리뱀, 골고타의 십자가상 주님처럼 고통스러울 때, 앞이 캄캄하여 한 걸음도 나서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을 때마다 가장 가까이에서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이었기에 때로는 고통 중에서의 희망이었고 무언의 용기를 주시는 부모님의 모습, 십자가상 주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집트를 떠나 사십 년간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 『어쩌자고 우리를 에집트에서 데려 내왔소? 우리를 이 광야에서 굶어 죽게 할 작정이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소』(민수 21, 5). 에집트에서 구원해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불평을 늘어놓는가? 불평 불만하는 사람은 독사에게 물렸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구리뱀을 만들어 기둥에 달아놓았고 구리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민수 21, 8~9 참조)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제된 것은 구리뱀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 전능하심에 온전히 의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신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는 모든 이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이와 같은 사랑을 깨닫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만 볼 수 있는 신앙」을 가진다면 인간사 그 모든 고해에서 구원 받고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말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십자가 십자가 무한 영광일세, 요르단강 저편에는 영원 안식 있네』를 불러보며 또 내일을 시작하렵니다.
십자가의 주님! 당신의 십자고상과 부모님의 영정을 자주 닦아드리는 아들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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