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다. 나약함, 우유부단함, 불명확함, 불확실함 등을 본성적인 요소로 지니고 태어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당연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러나 인간은 실패로 인해서 심한 고통과 괴로움을 겪는다 해도 좌절하지 않는다. 실패를 교훈 삼아 인격적으로 더욱 발전하고 성장하며 성숙하기를 바란다. 그 바람을 천성적인 것으로 간직하고 태어나는 것이 또한 인간이다. 그래서 인간은 희망의 존재인 것이다.
가정에서 구성원들의 삶은 실패와 성숙 지향의 희망을 한 몫에 보여주는 가장 적절한 예이다. 가정 구성원 가운데 그 누구이든 실패를 했을 때 비록 당사자는 약하게는 부끄러움이나 면목 없어함 혹은 수치심으로 그리고 강하게는 고통과 괴로움으로 몸을 움추리며 말문을 열지 못하는 입장이지만 다른 구성원들은 함께 근심하고 염려하며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감싸준다. 그 실패의 쓰라림을 함께 나누고자 힘쓰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실패한 구성원 한 사람만을 어려움과 고통 속에 남겨두고 싶지 않은 구성원 서로간의 사랑 때문이다. 그래서 실패한 구성원은 여타의 구성원이 함께 해주는 그 사랑으로 인해서 그들과 다시 일치하고 힘을 얻어 실패를 교훈 삼아 더욱 성장 성숙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인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교회 구성원 한 사람의 실패는 교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근심하고 격려하며 위로하고 감싸주어야 할 공동의 실패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그리스도 중심적인 사랑 때문이다.
성체성사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완전히 입문한 그리스도인이라 해도 실패의 쓰라림에서 전적으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나약함과 우유부단함, 불명확함과 불확실함 등을 본성적인 요소로 지니고 있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로 인해서 자칫 잘못하여 실패의 기회들을 맞을 수 있다. 이러한 때에 교회 공동체의 여타 구성원들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사랑으로 인해서 바로 그 사람과 함께 근심하고 염려하며 위로하고 격려한다. 그리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자신들과 일치하고 힘을 얻어 실패를 교훈 삼아 더욱 성장성숙해 나갈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이 바로 고해(회개와 화해)성사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내용에 대해서 성서가 언급하고 있는 바를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어서 고해성사의 실천적인 거행문제를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1.성서의 언급
예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선포하시고 그 선포에로 사람들을 초대하신 말씀은『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마르 1, 15)였다. 그리고 그 분이 공생활을 통해서 하시고자 한 일을 마무리지으시며 하신 말씀은『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그의(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하기 위한 회개가 선포된다』(루가 24, 47)는 명령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요약하면 회개와 죄의 용서를 통한 화해의 현실적인 실현을 위한 요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죄란 다른 것이 아니다. 구원을 거스르는 죄에 관한 믿음을 성서적 시각에서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모든 인간은 예외없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고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에로 불리웠다는 것, 그리고 사랑 안에서의 하느님의 자유로운 자아 증여는 인간성의 최종적인 평화와 행복 그리고 성취와 구원(해방과 생명)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은 그러한 사랑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자아 증여를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삶의 구제척인 경과 중에 그에 연루된 바를 생활해 감으로써만 은총과 최종적인 구원을 얻는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유롭기에 그러한 관계를 거절함으로써 그리고 하느님의 정의의 약속과 요구에 따라 사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떠나올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 인간이 안고 있던 아담으로부터 유래한 인류 공동의 죄는 이미 회개의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입문함으로써 그 허물을 벗을 뿐 아니라 은총으로 충만한 구원된 자가 되었다. 그리고 항구하게 회개한 자답게 성체성사의 삶을 살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성사다움을 상실하는 가운데 또 다시 자신의 탓으로 저지른 죄와 그로 인한 허물을 입게 되는 경우들이 있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경우의 죄와 그 허물은 새롭게 벗어버려야 할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죄는 이제 더 이상 하느님과 죄인 사이에서 개별적으로 처리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예수께서 실천적인 구원의 방안으로 제시해 주신 교회 공동체의 중재라는 방식으로 처리되어야만 하는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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