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이 큰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요한 12, 23~25)라고 말씀하셨다.
『영세 견진 대부님이 선종하셨답니다』라는 비보를 받고 고향 성당을 향하여 『자비하신 주님! 송 발라바 대부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옵소서. 당신의 큰 종 발라바 대부님을 성인 반열에 들게 하여 주시옵소서…』무릎 끓어 기도 올린 일은 한 평생 잊지 못할 일이기에 지금도 생각만 하면 가슴이 저미어 옵니다.
선종하신 후 본당 이곳저곳에서의 선종하신 대부님의 흐뭇한 이야기는 연도보다는 긴 화제거리가 되어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천주교 신자가 한 사람도 없는 유교가 쎈 마을에서 부모님과 가족, 마을 사람 모르게 읍내 성당을 몰래몰래 혼자 다니며 교리를 배워 16세에 받으신 후 회갑 때까지 45년 동안 공소 회장님으로 전교하시며 76세대 온 마을을 천주교 마을로 입교시키시고 그토록 바라시던 성당을 마을에서 제일 높은 언덕 위에 설립하시기까지의 고난과 보람을 지면의 제약으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음이 못내 안타까울 뿐입니다.
『별 희안한 사람 다 있네 …』대부님은 낮과 밤이 없는 생활로 마을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집안일은 성모님과 아내에게 맡기고 낮에는 마을 사람들의 농사일과 궂은 일을 돕는 일을 일부러 하셨습니다.
1945년 해방과 1950년 6·25 전쟁 전후로 질병이 많아 이름 모르는 병(염병)으로 죽는 이들이 많았는데 대부님께서는 상가집 돌보는 일에 누구보다도 앞장 서시어 장례와 삼우까지는 마치 머슴(농가에서 돈 받고 일 해주는 고용인)처럼 밤낮없이 일해 줌으로써 상을 치른 집안에서는 호감을 갖고 한 사람 두 사람씩 으레 천주교에 입교하였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정월 명절에 상을 당한 집에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도 발길을 들여놓지 않으려는 옛날 풍습에다 1백일도 안 되어 폐병으로 죽은 아기의 장례일로 쩔쩔매는 집에 들어가 손수 관을 만들어 지게로 져서 마을 건너편 산 공동묘지 한 편에 묻어주는 일이 계기가 되어 온 집안 가족 9명을 영세 입교시킴으로써 궂은 일에는 송 발라바 밖에 없어! 할 정도로 주님께서 주신 몸을 무리할 정도로 희생하셨다고 합니다.
『천주님이 있긴 있나봐…』 지금처럼 저수지가 없어 가물고, 농약이 없던 시절 누구나를 막론하고 벼농사 짓기는 참으로 어려웠던 시절에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 논에는 도열병으로 벼 이삭이 새빨갛게 타 죽었는데도 대부님의 논과 성당에 다니는 교우집 논에는 어김없이 메뚜기가 극성을 부릴 정도로 논농사가 잘 되어 「별 수 없군! 우리도 천주교를 믿을 수밖에 없어」할 정도로 당신의 큰 종 대부님을 통해 천주교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신 성모님의 축복도 큰 힘과 위안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76세대 마을에 천주교 신자가 반 이상이 넘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을 뒷편 제일 높은 언덕 대부님의 밭에다 강당을 짓던 해에 6·25 전쟁이 일어나 간신히 지붕만 덮었는데 우연히 지나가던 미군 장교가 보고 돌아간 후 며칠 후에 트럭에 가득히 나무를 싣고 와서 마무리 공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는 『천주님이 미군을 보내 주신거야! 아냐! 성모님이 보내 주신거야!』할 정도로 대부님의 성모님 공경은 지나칠 정도(?)였습니다.
대부님이 선종하신 후 요 밑에서 다 닳아빠진 공책이 유산으로 발견되어 장례미사 때 성당 안을 눈물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1. 황 바오로(서울로 이사) 2. 김 베드로(평택에서 사업) 3. 박 안드레아… 21. 이 안당(이 바르나바 수녀, 이 요셉 신학생 부) 69. 이 마태오( 이 마리아 수녀 부) 165. 이 요셉(신학생 대학 4년) 215. 박 안드레아(약대 입학)… 당신의 대자 2백15명의 인적 사항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공책도 공책이지만 선종하시기 직전까지 하루에 한 번씩 공책을 꺼내어 1번부터 215번까지의 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시던 대부님, 선종하시던 날에는 큰 아들을 부르시더니 손가락으로 한 명 한 명 짚으시며 기도해 달라고 하시면서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는 본당 신부님의 고별 강론을 들은 교우들이 엉엉 울었다는 이야기는 결코 흠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잘 썩으면, 싹이 돋고 자라 50여 개의 낟알을 맺듯이 송 발라바 대부님은 76세대 한 마을 전체를 1백% 천주교 마을로 입교 영세시키신 후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 19, 30) 하시며 숨을 거두신 예수님처럼 당신의 한 생애를 복음 선포와 신앙의 증인으로 불태우셨습니다.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성당의 십자가 예수님처럼 온 마을을 하느님의 자녀로 인도하는 등불로 타오르기까지 45년 동안 열정적인 공소 회장으로서의 내면의 고통과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삶을 하느님 이외에 그 누가 아시겠습니까? 성모님이나 아실까?
어느 가문이나 공동체 안에 단 한두 사람이 「땅에 떨어져 잘 썩는 밀알처럼」 당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었기에 하느님의 창조사업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 이 교회는 유지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겨자씨 자라나 큰 나무 되듯 발전과 번영을 거듭 감사드릴 뿐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골고타 십자가에서 죽으시지 않으셨더라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새남터 형장에서 순교하지 않으셨더라면…, 인류 역사가 거듭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들이 드러나게 아니면 드러나지 않게 잘 썩는 밀알처럼 죽으셨기에 우리는 그 남은 열매 덕분에 이만큼이나마 신앙 안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자문자답하며….
우리의 이웃, 후배, 후손들이 나를 두고, 우리를 두고 잘 썩은 밀알이었다고 이야기를 나누며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먼 훗날을 위해 나를, 우리를 잘 썩히는 일에 내 가진 바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오늘과 내일이기를 간절히 바라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사순절 십자가 주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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