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독일의 권위 있는 주간신문「차이트」가「냉혹한 나라」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사회적 상황과 정신적 풍토에 대해 긴 기사를 실었다. 그 글은 한국 사람들의 삶은 돈, 권위, 그리고 명예만을 쫓느라고 타인과 이웃에 대해 관심 가질 시간이 없으며, 청소년들은 청소년기의 전부를 대학시험 준비로 소모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이것은 독일 친구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이 친구는 한국의 청소년들이 가치로운 삶에 대해서나 자신을 위해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기사가 비록 전형적인 신문의 일방적 보도이기는 하나 청소년기가 시험 준비로 보내어지고 있다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편지를 받은 얼마 후에 우연히 특설반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학생들의 바람이나 의사는 무시된 채 교사와 학부모들의 주장과 힘으로 만들어진「일류대학 준비반」은 학생들에게 경쟁심, 우월의식, 좌절감, 소외감, 분열 등을 조성하고 있다. 그로 인해 파생되는 심리적, 교육적, 사회적 문제점에 대한 염려는 회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으로 자녀 교육의 질을 평가하기를 서슴치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이 가지는 그 시기의 다양한 욕구들을 대학 진학 이후로 미루어 두기를 강요하기까지 하는 형편이다.
청소년기는 자주적 사고, 자의식과 세계관을 정립해 나가는 시기이다. 이 때를 Erikson은「자아 정체성」을 찾고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는 시기라고 한다.「나는 누구인가?」라는 청소년기의 물음을 어른들은 학벌과 권력 위에서만 가치 있는 질문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가정과 학교에서 청소년들의 삶의 질은 성적 순으로 평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신적, 신체적, 욕구를 무시당한 채 청소년기를 지난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어서 과연 신뢰하고 이웃을 돌보는 사회와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른들은「경험철학」만을 주장하며 청소년을 훈계하고 금지하는 대신 그들의 새로운 생각을 듣고 존중해 줄 수 있도록 생각과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사회가 성적으로, 학교로 청소년들을 평가하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아무런 가능성도 약속할 수 없다. 불안해하지 않고 청소년들이 주체성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우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냉혹한 나라라는 오명을 씻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교육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장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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