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이면서 인구의 95% 이상이 가톨릭인 나라. 그러나 지정학적 역사적 이유로 슬픈 운명을 멍에처럼 지니고 살았던 폴란드.
지난 89년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성체대회는 말 그대로 뜨거운 감동의 현장이었다. 여의도 광장에 운집한 50여만 명의 신자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의 한 귀퉁이에 자리한 조그만 나라 한국에서 펼쳐진 장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회술하고 있다.
◆동구권 최초의 민주국가
재위 후 80여 회에 가까운 해외 순방을 나선 바 있는 교황은 두 차례의 한국 방문을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들로 손꼽고 있다. 하지만 교황의 가슴 속에 복받치는 감동으로 남아 있는 또 한 차례의 여로가 있다.
1978년 크라코프의 대주교 카롤 보이티야, 신임 교황으로 선출되어 요한 바오로 2세라는 이름을 갖게 된 그는 이듬해인 1979년 조국 폴란드를 방문한다. 당시 동구 공산국가의 하나였던 조국을 9일 동안 방문한 그는 32차례의 각종 행사와 전례에서 무려 1백만 명 이상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운집하는 장관을 경험했다.
공산주의의 압제, 극심한 경제 불황, 억눌린 인권에 시달리던 당시 폴란드 국민들은 자신들의 동포 중 하나인 보이티야 추기경이 교황에 선출되고 이어 고국을 방문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전망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10여 년 후 폴란드는 공산주의의 악령으로부터 탈출한 최초의 동구권 국가가 된다.
올해 5월에는 바로 그 역사적 현장인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제46차 성체대회가 막을 올린다. 이번 성체대회는 교황의 고국, 동구권 최초의 민주화 국가에서 열린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쇼팽의 선율이 살아 숨쉬는 음악의 나라, 코페르니쿠스와 퀴리 부인이 살았던 과학의 나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국이며 인구의 95% 이상이 가톨릭인 나라. 그러나 지정학적, 역사적 이유로 슬픈 운명을 멍에처럼 지니고 살았던 폴란드.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 인상적이지만 특별히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빼어난 관광 자원이나 휴양지가 많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은 서유럽과는 다른 특별한 감회를 갖는다. 그것은 폴란드가 지닌 매력이다.
폴란드는 북위 49도에서 55도, 동경 14도에서 24도 사이에 자리잡아 유럽 대륙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남부의 일부 산악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북유럽 평원에 속하는 저지대이다. 총면적 31만2천6백83평방킬로미터로 한반도의 약 1·4배 정도이다. 온화한 대륙성 및 해양성 기후를 가진 폴란드의 인구는 3천8백36만 명이다.
폴란드의 압도적인 대다수는 로마 가톨릭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가톨릭 국가 중 하나이다. 폴란드에서 가톨릭교회는 상당한 사회적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제2차 대전 후에는 모든 종교 기관들이 국가의 통제하에 있었으나 사실상 신자들과 교회의 모든 활동은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정부가 아니라 로마에 있는 교황에게 전해졌고 중요한 결정들은 교황의 조언에 좌우됐다.
◆한국과 유사한 역사
폴란드의 역사는 한반도의 그것과 유사한 맥락을 갖는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지녔던 때의 기록들은 북으로 북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갔던 고구려의 웅혼함을 보는 듯도 하고 1천년 이상 외침과 분할을 당했던 비극적인 역사는 오랑캐와 왜구의 침범을 끝없이 물리쳐야 했던 우리의 역사와 비슷하기도 하다.
폴란드의 역사는 엄청난 부침을 계속해 왔다. 1천5백년대 중반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진 국가이기도 했으나 1천여 년간 폴란드라는 이름은「떠다니는 나라」였다.
11세기와 12세기 극심한 내란을 겪었던 이 나라는 그때에 이미 영토의 분할을 경험했고 13세기에는 몽골의 침입을 받았다.
16세기에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의 영향을 받아 프로테스탄트 개혁이 일어났다. 15세기에 이르러서는 오토만제국, 러시아의 침입을 받았다.
7년 전쟁이 발발하고 난 얼마 후 1772년과 1773년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등 외국 세력은 폴란드의 영토를 갈갈이 찢었다.
두 차례에 걸친 분할은 영토뿐만이 아니라 국민들과 그들의 문화, 종교까지도 나누었다. 교회도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러시아에 속한 동부지역의 주민은 정교회 신앙에 따라야 했고 프러시아는 가톨릭 신자를 박해했으며 오스트리아는 종교의 국가관리 체제를 강력히 시행했다.
1차대전 후 독립한 폴란드는 2차대전을 겪으면서 인류사에 일찍이 유래가 없었던 엄청난 학살을 경험한다. 크라쿠프 서쪽 6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인간의 잔임함에 대한 고발이자 폴란드의 비극적 역사의 한 장이다. 나찌 독일 최대의 수용소였던 이곳은 1940년부터 5년간 폴란드를 비롯한 29개국의 4백만 명이 살해된 곳이다.
◆변화와 개혁의 새 기치
2차대전이 끝난 후 폴란드는 공산화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암흑의 시기는 1989년 6월 공산권 최초의 자유 선거를 통해 민주 정부를 세움으로서 막을 내리고 이제는 경제 부흥을 향해 전 국민이 나서고 있다.
옛 고을을 보는 듯한 편안함과 이웃집 아저씨 같은 순박함을 가진 폴란드. 그 폴스키(폴란드인)들은 역사를 통해 배양한 자신들의 전통적인 저력으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
변화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수도 바르샤바, 중세 고도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크라코프,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있는 소금 광산, 동유럽의 휴양지이자 스키 명소인 자코파네 등은 외국인들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명소이다.
오욕의 역사 현장인 아우슈비츠는 고스란히 보존되었고 바르샤바 등 폴란드 도시의 건물들도 과거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해 벽에는 아직도 총탄 자국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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